매일신문

송씨, 北서 활동비 15만달러 받아

국정원이 1일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 재독학자 송두율씨의 행적은 그가 사실상 간첩활동을 해 왔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매우 충격적이다.

그는 '남 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고뇌하는 통일운동가로 자처해왔으나 사실은 북한 노동당에 입당하고 정기적으로 공작금을 받아왔으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충성맹세문까지 전달하는 등 '확신에 찬 친북인사'임이 드러난 것이다.

국정원 보고내용을 공개한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에 따르면 송씨는 지난 73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18차례 입북했고, 북측으로부터 활동비 등 명목으로 미화 15만달러 정도를 받았다.

이는 국정원 조사에서만 확인된 액수이다.

송씨는 73년 9월 독일을 거점으로 활동 중이던 유학생 출신 북한 공작책 이재원(당시 41세)씨에 포섭돼 모스크바를 거쳐 북한에 들어가 초대소에서 2주간 주체사상 학습 및 공작원 교육을 받았다.

송씨는 바로 노동당에 입당했으며 활동비로 2천달러를 받았다.

송씨는 다음해인 74년 재독 한국인 유학생 등을 규합, 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결성한 데 이어 80년대 들어 북한 입장에서 북한을 이해하자는 '내재적 접근론'을 제시, 친북 운동권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이후 86년 11월엔 유학생 간첩 출신 오길남씨가 유럽에서 망명신청을 했을 때 "내가 오형이라면 북한에 다시 들어가겠다.

우리가 기댈 언덕은 북한밖에 없다"며 입북을 권유했다.

송씨는 88년 9월에는 다시 입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소속이던 전금철 등으로부터 재독유학생을 포섭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1천~2천달러를 받았으며, 88년 올림픽을 앞두고는 '평화로운 게임이 될 수 없는 나라'라고 한국을 비판하는 책을 내기도 했다.

송씨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91년 5월 노동당 후보위원이 됐다는 통보를 받게되고, 북한의 사회과학원 초청으로 입북, 김일성을 면담했다.

이후 송씨는 95년까지 독일의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연구비조로 매년 2만~3만달러를 받아 왔다.

특히 96년 8월 부친이 사망했을 때는 김정일로부터 1천500마르크의 조의금을 받기도 했다.

94년 7월8일 김일성 사망 당시에는 장례위원으로 선정돼 입북했다.

국정원은 장례식장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손목을 붙잡고 우는 사진을 정보위원들에게 공개했다.

송씨는 또 95년 7월부터 김용순 및 김경남 등의 지시로 중국 베이징과 평양 등에서 6회에 걸쳐 남북 및 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를 주도했으며 이후 범민련 유로본부에 가입, 활동하면서 북한 정권수립일(9월9일), 노동당 창건일(10월10일), 김정일 생일(2월16일) 등 북한의 기념일 때마다 '장군님의 만수무강을 빈다'는 친필 충성맹세문을 10여차례 작성, 북한에 전달하기도 했다.

정경훈기자 jgh0316@imaeil.com

사진:지난 94년 김일성 사망 직후 방북해 김정일과 손을 잡고 있는 장면이 당시 북한 조선중앙 TV에 방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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