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 초입서 만난 과수원 주인은 참나무(숲) 쪽을 가리켰다.
"그래도 수입은 괜찮은 것 아니냐"는 물음에 대한 '침묵의 답'이다.
한참 있다가 말문을 열었다.
사과가 태풍으로 떨어지고 벼는 다른 밭의 채소가 거덜이 난 올해 농사 최악의 상황을 도토리 소출(所出)과 관련지어 옛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자연의 섭리 설명이다.
흉년이 들면 도토리가 많이 생산되고 풍년이면 이상하게도 꿀밤의 양이 형편이 없다고 했다.
그날 주흘산 일대 참나무 숲 곳곳에 도토리를 주어 담는 할머니들이 어런어런 거렸다.
지금, 농촌은 '도토리가 땅위에 가득 떨어진 상황'이다.
흉년에 농산물 개방 위기다.
엎친데 덮쳐서 미래에 대한 보장도 암울하다고 봐야 한다.
농산물 개방 압력 파고(波高)가 갈수록 거세질 것은 분명하게 예고 돼 있고 정부의 대책은 그냥 그냥 표(票) 몰이성이나 땜질처방 인상이 짙다.
허송 세월만 한 무대책(無對策)이라는 지적도 가능할 성싶다.
무엇을 한 흔적이 없다.
되돌아보면 이것은 확연(確然)하게 드러난다.
지난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UR) 타결은 우리나라 농업에 대한 경고였다.
간신히 10년간 쌀 관세 유예기간을 인정 받았으나 쌀 수입의 일부 허용을 해야만 했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쌀 수입은 절대 안된다고 큰소리쳤으나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허풍(虛風)으로 끝막음 한 딱한 꼴을 지금도 기억한다.
UR 이후 우리농촌은 달라진 게 있는가. 대책은 별무신통이었고 나아진 게 없다는 게 결론이다.
10년간 투입한 농업 예산은 71조8천억원이나 된다.
매년 7조원이상을 퍼부었어도 농촌의 살림살이는 위축을 거듭했다.
부채만 늘었다.
현재 농가의 소득은 도시 근로자 가구 소득의 73% 밖에 안된다.
정부는 내년 농업부분 예산을 8조8천824억원을 책정했다.
농업파탄에 근본적인 접근이라는 평가는 내리기 힘들다.
농민들은 한마디로 농촌의 위기를 고려하지않은 동결예산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 농업을 포기하겠다는 발상으로 치부한다
이젠 '개방에 대비해 농업경쟁력을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는 식의 원론주장은 곤란하다고 본다.
코앞에 닥친 농촌의 파탄을 막기위한 구체적인 비상대책 마련에 나설일이다.
지난달 22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가 '농업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은 정치인들의 해묵은 연례성 행사라는 질책을 받게 돼 있다.
이런 선언적인 행위가 농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묻고 싶다.
농민들에게 인기전술이나 구사하는한 한국의 농업과 농촌은 늘 그 모양 그 꼴에 주저앉을 수 밖에 없다.
농산물 개방 등이 닥칠때마다 그냥 적당하게 농업예산을 국가예산 10% 수준까지 확보하겠다는 식의 무책임한 공약(公約)으로는 농촌을 망칠 뿐이다.
농업을 떠날 수 밖에 없는 '한계(限界)농민'을 받아줄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취업 대비훈련이나 일터 마련 등 농민들이 스스로 살아갈 방편을 적극 서둘러야 한다.
특단의 대책을 미룰일이 아니다.
한국 농업위기 실상(實相)을 농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어야 한다.
농산물 개방의 폭도 예상외로 커질 수 있다는 최악의 경우 상정도 솔직하게 밝힐 일이다.
우리는 개방의 파고가 밀려오는데도 역대정부가 농민들의 표를 의식해 이런 실상을 감추는데 급급했다는 지적을 할 수 있다.
개방은 냉엄한 국제적 현실이다.
개방을 피할 수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기만의 행정은 결국 농민들로부터 거센 저항을 부를 것이다.
'개방확대 저지' 노력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게 원론의 대책이긴하다.
꼭 된다는 듯한 관료들의 언급은 농민들에게 결과적으로 불안감 조장이다.
실패도 예상된다는 정부측의 분석은 아직까지 나온 적이 없다.
'장밋빛 분석'이 지금까지의 작태(作態)였다.
실패할 경우를 예상한 대책이 절박하다.
농민을 속이는 농정은 거둘때다.
농촌의 구조조정 필요성도 정확하게, 그대로 밝혀야 충격의 완화다.
농촌 지원에 대한 불가피성도 국민들에게 설명할 책임도 있다.
경제논리로 보면 농업예산 8조원대는 '낭비적 요인'이 있다는 시각도 가질 수 있다.
농촌지원은 보험성격이 강하다고 본다.
국토의 균형적인 이용과 관리측면에서 보면 농촌의 중요성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식량안보(安保) 차원에서도 지원을 외면하지 못한다.
지구의 식량생산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마냥 식량수입확대는 걱정 스럽다.
식량자급률 25% 수준인 우리나라의 농업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다.
적정한 농촌환경관리는 국민들에게 휴양공간 확보의 의미도 있다.
보험성격의 농촌지원은 앞으로도 낭비는 아니다.
최종진(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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