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파트 분양 '묻지마 투기'열풍

전국적으로 부동자금은 400조원. 우리나라 내년 예산(117조)의 3배보다 더 많은 이 뭉칫돈은 수시로 투기자본화하여, 전국 어디든지 공격한다.

이 거대한 부동자금은 수도권 재건축 시장을 공략하여 시세 차익을 남기다가 수도권 일대가 부동산 투기 과열지구로 묶이자 아파트 분양권 전매가 자유로운 부산을 공략했다가 다시 최근에는 대구로 방향을 틀었다.

이 부동자금이 노리는 곳은 대구에서도 수성구의 신규 아파트 분양현장이다.

최근들어 신규 분양아파트는 투자의 3요소라고 불리는 수익성, 안정성, 환금성을 모두 갖추면서 최고의 재(財)테크 수단이 되었다.

이처럼 신규 분양아파트가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잡으면서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아파트 분양 현장에서는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대기하고 있던 수백조원대의 부동자금이 서울, 부산에 이어 대구를 공략하고 있다.

그러나 2일부터 대구시 수성구 일대가 부동산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됨에 따라 분양권 전매가 소유권이전등기시까지 금지되면서 이들 부동자금들은 대구 달서구나 울산으로 향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대대적인 분양이 이뤄지는 곳이라면 은행장이 직접 나서서 시공사를 상대로 청약예치금 유치운동을 벌일 정도로 현금이 유입된다.

대규모 분양시 몰리는 청약증거금과 계약금만 해도 천 수백억원을 넘긴다.

수성구 황금동 캐슬골드파크의 경우 32평 135가구 모집에 1만6천명이 청약, 청약증거금만 320억원이 몰렸다.

전체 평형의 가구에 대한 청약증거금을 다 합친다면 1천억원을 쉽게 넘어선다.

범어동 유림 노르웨이숲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9월에 분양한 대구지역 아파트 단지마다 적어도 1천억원 가까운 청약금이 들어온다는 얘기다.

최근 뜨거운 열기 속에 분양된 대구의 한 아파트단지의 경우 계약금의 60% 이상이 금융기관 대출을 통해 지불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파트 분양가가 대폭 오르면서 예전에는 중도금 단계부터 금융기관 대출을 이용하던 것이 이제는 계약금 단계부터 금융기관 대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대구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분양이 예정돼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막대한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지금 금융권에서는

그러나 은행 등 금융기관에선 일단 이런 현상이 제대로 감지되지 않는다.

국민은행 대구본부의 월별 대출 추이를 보면 주택자금의 경우 올들어 3월까지 1조7천800~900억원대를 보이다 4월 이후 1조8천억원대로 올라선 이후 7월 1조8천46억여원에서 지난달 1조8천385억여원으로 0.02% 늘어나 증가세가 미미하다.

가계자금도 7월말 4조82억여원에서 8월말 4조1천604억여원으로 0.02% 늘어났을 뿐이다.

대구은행의 주택담보대출도 7월 1조5천509억원, 8월 1조5천558억원으로 별 변화가 없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최근 부동산 투자나 투기성 자금이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은행의 대출 현황에선 그러한 변화를 알 수 없다.

부동산으로 자금이 몰린다면 아마 전국적으로 400조원에 달하는 부동자금이 움직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의 산업별 대출 동향 자료에는 6월말 기준 가계대출금이 12조7천583억원으로 5월보다 1천135억원(0.5%) 증가, 5월 증가분 623억원보다 증가폭이 커졌다.

◆지금 부동산업계에서는

예전에는 부동산 투자가 안정성과 수익성이 높은 데 반해 환금성이 떨어져 증권, 예금 투자와 함께 적절한 부의 분산이 이뤄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학군이나 여건이 좋은 아파트의 인기가 상종가를 치면서 환금성도 높아져 대거 몰리고 있으며 저금리시대이니만큼 대출을 해서라도 아파트 투자에 끼이려는 이들도 적지 않다.

부동산중개사 권오인씨는 "예전에는 부동산 관련 문의가 하루 2, 3건에 그쳤으나 최근에는 10건 정도에 이르고 있으며 금융 대출에 관해 묻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권씨는 "신규 아파트 청약현장을 보면 실수요자가 60, 70%, 재산 증식을 위한 가수요자는 30, 40% 정도로 파악된다"며 "어떠한 경우든 상당한 부동자금이 재건축이 예정되는 택지 매입이나 아파트 신규분양시장으로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인이 느끼는 위화감은

아파트를 포함한 부동산 열기가 달아오르다 보니 서민들의 심리도 덩달아 요동치고 있다.

아파트 분양가가 턱없이 오르고 프리미엄이 1억원 이상을 호가하면서 분양권 프리미엄을 챙기겠다고 들뜨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가만히 있다가 평생 아파트 하나 못갖고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심리적인 박탈감에 젖는 사람도 없지 않다.

"33평 아파트 한채에 2억원을 넘어서니 200만원짜리 월급쟁이가 월급을 고스란히 다 모아도 10년을 모아야 할판이다.

애들은 커가는데, 이러다가 집 장만의 꿈이 영영 물건너갈 것 같다"며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화되는데 대해 불안해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괴물처럼 커지는 부동산 시장의 '파이'는 사실 사람들의 심리적 동인에 좌우된다.

회사원 김모(40)씨는 지난해 4월 장기투자로 손해보고 있는 증권계좌를 정리한 뒤 당시 재건축 예정이었던 황금주공아파트 11평형을 프리미엄 1천700만원을 포함해 6천700만원에 구입했고, 조합원의 자격으로 48평형을 분양받았다.

최근 황금주공 아파트(캐슬골드파크)의 프리미엄이 1억원이 넘는다는 소문에 그는 밤에도 잠이 오지 않는다.

◆서민까지 저금리 대출받아 부동산 투기

공무원 박모(48)씨는 고속철도 경주역사 건립을 둘러싸고 논쟁이 한창이던 지난 5월 5천만원을 들여 역사 후보지인 건천의 임야를 구입했다.

요즘 박씨는 부동산업자들로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매각 의사를 타진받고 있으며 그 중에는 박씨의 임야를 1억원에 매입하겠다는 제의도 있었다.

박씨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은행 예치 자금과 친지들의 자금을 동원, 주말이면 토지 사냥(?)에 나선다.

이에 비해 회사원 임모(40)씨는 상대적으로 실패한 사례. 경산에 살던 그는 지난 2001년 자녀가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에 대구로 전학시키기 위해 학군이 좋다는 수성구의 아파트를 둘러 보았지만 당시에는 건설회사의 부도 여파로 신규 아파트가 없었다.

그렇다고 수성구의 오래된 아파트를 분양가보다 비싼 가격에 구입하기 싫어 북구의 아파트를 수성구 시지동의 아파트 시세이던 1억2천여만원에 분양받아 최근 입주했다.

그러나 그가 입주하는 시기에 수성구 아파트의 시세는 폭등해 2억원에 육박했으나 그의 아파트는 원가 수준인 1억3천만원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수성구에 새로 짓는 아파트의 분양가가 평당 1천만원에 곧 도달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심 불안하지만 일본형 장기불황의 시작으로 아파트 가격 거품이 꺼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돌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돈이 움직이는 곳에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이며 사람들의 마음이 쏠리는 곳에 돈이 쏠린다"며 "지금 사람들의 돈과 마음이 향하는 곳은 부동산"이라고 말했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