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이순목의 슬쓸한 퇴장

"틀림없이 구속될거야". "그래도 대구에서 일을 많이 했는데…".

2일 대구지방법원에는 이순목(65) 전 우방회장의 구속여부를 묻는 전화가 하루종일 쏟아졌다.

오후 6시쯤이면 영장발부 여부가 결정되는데도, 조금이라도 일찍 이를 알려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던 것. 법원 관계자들도 "글쎄요…"라는 시원찮은(?)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만큼 그의 구속여부는 관심사였다.

이 전회장은 80, 90년대를 풍미한 대구의 대표적인 기업인이었다.

78년 주택전문회사 우방을 설립한 후, 아파트 건설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발견하면 망치로 부셔버렸다는 얘기는 전설처럼 남아있다.

'우방이 아파트 건설 역사를 새로 썼다'는 말도 이 전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전성기때 사회봉사, 문화활동에 관심을 가졌고 주위로부터 크게 인심을 잃지도 않았다.

그가 공적자금 2천600억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도, 이같은 전력 때문에 동정론이 끊이지 않고 있는지 모른다.

그가 2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법원에 나왔을 때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했다.

당뇨로 인해 간호사를 대동하고 두 아들의 부축을 받은채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장면은 예전의 자신감 넘치는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씁쓸함을 느끼게 했다.

그는 현재 심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고개를 숙인채 "죄송하다"는 말만 연발했다.

인간적인 연민이야 가질 수 있겠지만 그가 은행돈을 부당하게 빌려 임의로 쓴 구시대적 기업인이었고, 수많은 입주민과 우방직원 등에게 큰 피해를 입힌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가 구속돼 구치소로 옮겨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 시대 기업인들의 자세는 과연 어떠해야 할까"라는 새로운 숙제를 떠안은 느낌이 들었다.

박병선(사회1부)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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