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맞벌이시대 외로운 아이들

초등학교 2학년인 동욱(가명)이는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있다.

친구들이 자신을 건드리는 걸 싫어하고 공부도 하지 않으려 한다.

엄마에게 침을 뱉고 오줌도 지린다.

걱정이 된 부모가 상담을 받아보니 동욱이의 문제는 불안정했던 양육환경과 관계가 깊었다.

동욱이는 두살 때 직장에 다니는 엄마와 떨어져 할머니와 지낸 적이 있다.

엄마를 찾으며 많이 울고 보챘던 동욱이는 직장때문에 2년 가까이 아빠없이 생활하기도 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과 보다 나은 경제적 생활을 위해 맞벌이가 보편화되고 있지만 그 와중에서 상처받고 정상적인 성장을 못 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부모가 있지만 실제로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부모들은 아이가 이상 행동을 보이기 전까지는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느끼지 못 하고 있다.

◇아이가 이상해요

말수가 적은 할머니가 키워서인지 아이가 말이 늦어요좭 좬우리 아이는 왜 말을 못하는 걸까요?

부모의 눈에 가장 먼저 띄는 것이 아이의 말이다.

그러나 단순히 말이 늦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언어 등 한 부분의 발달 지체를 보이는 아이들은 사물에 대한 인지 능력이 떨어지고 사회성이 결여되는 등 다른 부분에도 발달 지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조금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방치해둘 경우 심각한 이상 행동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아이가 비디오만 보려고 해요. 비디오를 끄면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고 울어요. 소위 비디오증후군을 보이는 아이들은 부모가 맞벌이를 하거나 양육자가 자주 바뀌는 경우, 엄마가 집에 있어도 몸이 안 좋은 경우가 많다.

아이는 많이 설치고 새로운 사물을 뒤져 보고 탐구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이렇게 설치는 아이를 가만히 앉아있게 하는 방법으로 비디오를 몇 시간씩 보여주기 시작하면 이것이 습관화돼 비디오가 없으면 불안해하고 이상행동까지 보이게 된다.

낯선 사람을 보면 벽장 속에 숨고 말도 하지 않으려 하는 등 애착장애를 보이기까지 한다.

자동차 바퀴와 같이 돌아가는 것에만 관심을 보이는 등 특정 사물에만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은 지나치게 한 가지 사물에만 노출된 경우가 많다.

◇엄마, 아빠가 없어요

부모가 있지만 부모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알쏭달쏭한 이 말은 전문 용어로 부성(父性).모성(母性) 실조라고 표현한다.

아이는 생후 6개월경부터 소위 낯가림이라고 하는 애착 행동이 형성된다.

울거나 찡그리는 등 수동적으로 나타나는 애착 행동은 돌 이후가 되면 능동적으로 표현된다.

다른 사람과 부모를 구분하게 되고 따르면서 애착이 형성되는 것. 생후 6개월부터 만 6세 유아기동안 양육자가 자주 바뀌고 양육태도에 일관성이 없으면 아이는 혼란을 겪게 되고 애착 장애와 성역할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사람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사물에 집착하는 이상 행동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

처음엔 엄마에게만 쏠리기 시작하는 애착 행동은 만 3∼6세때 이성 부모에 대한 애착으로 분리되기 시작한다.

딸의 경우 아빠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엄마를 동일시하게 되는 것.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화장품을 바르는 등 엄마의 행동을 따라하는 모습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때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볼 수 없으면 성역할을 가지는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아빠의 역할이 장차 대 남성관, 결혼관으로까지 연결이 된다.

아들의 경우 반대로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아빠를 동일시하면서 남성의 역할을 채택하게 된다.

엄마를 보며 대 여성관이 형성되는 것도 이때다.

특히 아들은 나는 너를 믿는다는 아빠의 기대가 성취 욕구를 높이는데 큰 힘이 된다.

영.유아기동안 아빠가 아들과 함께 놀며 기대감을 넣어주면 IQ지수가 8∼10정도 차이가 날 정도로 지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질적인 양육이 필요하다

맞벌이를 탓할 수는 없다.

여성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부모 모두 자녀에게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엄마들은 직장일에 지쳐 집에 오면 피곤해 모든 것이 귀찮아지는 법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엄마가 24시간 아이와 함께 있는 경우에도 모성 실조가 나타날 수 있다.

즉 시간의 양보다 질적 양육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귀가해 짧은 시간이라도 자녀에게 관심을 주고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똑같은 환경에서 자란 형제자매라도 아이들은 저마다 타고난 기질(개인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아이가 조용한 성격일 경우 퍼즐을 함께 하고 동적인 성격일 경우 바깥에서 공놀이를 하는 등 아이의 특성에 맞춰 질적 양육을 제공하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부성 실조가 생기지 않게 하려면 아빠의 역할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권영화 한국어린이능력개발연구소장은 우리 사회는 자녀 양육을 부모의 문제로 돌리는 경향이 짙다며 직장내 보육시설을 확대하고 세분화되고 있는 직업 형태에 따른 보육시설의 다양화를 꾀하는 등 정부 차원의 지원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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