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간 적이 있다.
처음에는 어색함이 흘렀으나 술잔이 몇 번 돌고 나니 십 년 지기처럼 어깨동무도 하고 거침없이 경상도 특유의 친근감 있는 욕설도 하게 되었다.
그리곤 저마다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그런데 이 때부터 묘한 감정 대립이 생겼다.
저마다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열변을 토했기 때문이다.
말투는 대수롭지 않은 듯 했지만 내포된 뜻은 '나 이 정도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야' 라는 것이 역력히 묻어났다.
상황은 달라도 주변에선 이런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나는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어서…….' '요즘은 얼마나 바쁜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 '내가 없으면 일이 안 돼' '그 정도 갖고 뭘 그래, 난 말이야…….' 이런 식의 말속에는 자신을 인정해 달라는 뜻이 아주 강하게 나타나있다.
이것은 욕망이다.
욕망 중에서도 타인에게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단순하면서도 강한 욕망이다.
형태만 조금 다를 뿐 평범한 사람이든, 사회적으로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든, 대부호이든, 이름난 예술가이든 인간은 누구나 타인의 시선을 필요로 한다.
타인의 시선을 느끼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낀다.
물론 여기서의 '타인'이란 개념은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일컬을 수도 있고, 자신이 닮고자 하는 인물일 수도 있으며, 이상적인 상징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욕망의 끝은 없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자신의 욕망이라 여기기 때문이며 타인의 시선은 언제 무엇을 하건 늘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욕망을 채울 수 없다면 욕망을 버리는 것은 어떨까? '연탄길'이라는 책을 보면 범죄자의 길을 걷게 될 것이 분명한 자식을 위해 아버지가 먼저 고의로 범죄자가 되어 범죄자의 고충을 자식에게 보임으로써 자식이 그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막는 이야기가 있다.
어둠 속에서 자신을 주위보다 더 어둡게 함으로써 주위를 밝히는 빛의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자신을 버리면 타인의 시선도 자연스레 사라진다.
자신을 버림으로써 또 다른 '나'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이 비록 다른 형태의 욕망이요, 타인의 시선이 될지라도.
전종필〈동명 동부초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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