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길

이탈리아 출신의 명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작품'길(La Strada·1954)'은 유랑 서커스단의 쓸쓸한 삶을 탁월한 시적 영상언어로 만든 명화다.

명우 앤터니 퀸과 펠리니 감독의 부인 줄리에타 마시나가 주연한 이 영화는 애잔한 트럼펫 소리를 배경으로 우악스런 떠돌이 약장수와 백치소녀의 신산한 삶을 그려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여기에서의 '길'은 바로 우리네 '인생여정'의 상징. 세상은 늘상 시끄러워도 계절의 바퀴는 돌고 돌아 어느새 10월. 여름의 뒷내음이 묻어나던 9월과 달리 10월은 어느모로나 진짜 가을이다.

봄·여름 내내 윤기나던 가지들과 풍만한 잎들은 조금씩 여위어 가고 그들의 왕성한 생명력으로 인해 좁아 보이던 길들도 서서히 비워져 간다.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 조금씩 가난해져 가는 길들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어디론가 길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철학자 마르쿠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풍요로운 감옥'에 비유했다.

먹는 것, 입는 것, 즐길 만한 것 모든 것이 넘쳐나지만 이런 것들이 풍요로울수록 정작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잃게 되고 결국 감옥에 갇힌 처지와 다를 바 없게 된다는 의미다.

춥도 덥도 않은 달 10월은 길 나서기에 좋은 때다.

정염이 치솟는 여름 바캉스와 달리 지금쯤 길 나섬은 일상 속에 매몰된 자신을 새로 만나는 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을엔 때때로 홀로, 조용히 길 나서는 것이 이 겸손한 계절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최대한 가벼운 짐으로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서뭇서뭇 길을 걷다보면 '지상의 모든 길들은 초행길'(강행림시 '나팔꽃'중)임을, 그리고 모든 길은 길에 이어져 있음을 새롭게 느낄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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