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와 사람-이상길 대구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

이상길 대구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

해체와 재창립이라는 우여곡절을 겪은 대구시립합창단은 요즘 '소리'가 매우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제5대 상임지휘자인 이상길(54)씨가 지휘봉을 잡은 이후부터란다.

지난달 25~27일 대구오페하우스에서 열린 대한민국합창축제에서도 대구시립합창단은 돋보이는 음색과 음악성을 보이며 갈채를 받았다.

국내외 유수의 합창단 16개팀이 출연한 이날 합창축제에서 대구시립합창단은 '가막덤불' 등 3곡의 창작곡을 모두 아카펠라송(무반주곡)으로 불렀다.

무반주곡을 레퍼토리로 선택한 것은 인간의 목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이며 가능하다면 반주없이 노래하는 것이 합창의 백미라는 이상길 지휘자의 신념 때문이다.

이상길은 강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지닌 지휘자는 아니다.

대신 조화와 어울림을 중시하며 '온도'가 느껴지는 따뜻한 음악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개성을 뽐낼 양으로 각자 소리를 질러대면 합창이 될 리 없습니다.

다른 단원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소리를 맞출 줄 아는, 적당한 억제와 절제야말로 합창의 생명이지요".

대구시립합창단의 지휘봉을 처음 잡은 지난해 7월 이상길은 "단원들의 자질은 뛰어나지만 집약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합창단이 해체된 충격으로 단원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점을 느꼈으며 단원들 사이에 서먹서먹하고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하모니가 최고의 덕목인 합창을 하기에는 최악의 여건이었다.

치유가 시급했다.

그에게도 음악적 아픔이 있었다.

수원시립합창단을 1983년 창단한 뒤 줄곧 상임지휘자로 지냈지만 예기치 않은 구설수에 휘말리며, 2001년 6월 상임지휘자 직에서 사임하는 등 마음고생이 심했다.

"앞만 보고 살아왔지만 그 일을 계기로 옆도 살피고 세상을 깊게 보는 눈을 떴습니다.

대구시립합창단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 단원들과 아픔을 함께 하려고 했습니다".

지난 1년간 이상길은 단원과 단원, 단원과 지휘자 사이의 닫힌 마음을 열고자 애를 썼다고 했다.

'세상은 사랑할 대상이지, 인정받는 곳은 아니다'는 그의 지론이 단골 대화 메뉴였다.

취임 초기 그가 단원들과 주로 나눈 이야기는 음악이 아니라 단원들의 기질과 성향 테스트를 위한 대화였다.

단원간의 우열에 따른 발탁과 도태 작업은 하지 않았다.

이상길은 단원들이 서로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고 있음을 느낀다.

지난 8월초 공연차 서울에서 머물 때 단원들이 소품을 서로 챙겨주는 모습을 보며 "음악 안에서 조금씩 치유가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소리도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운전습관을 바꾸기 힘들 듯 단원들로 하여금 소리를 지르기보다 남들의 소리를 듣고 절제하며 억제하는 습관을 들이게 하는데 1년이 걸렸다"며 "앞으로 대구시립합창단의 음색이 좋아지는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대구시민들의 바람을 잘 알고 있다"며 "아직까지는 기대에 못미치고 있지만 애정을 갖고 지켜봐 주면 세계 속에 우뚝 서는 대구시립합창단의 모습을 언젠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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