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태극기 모양이 잘못된 것 아니예요?" "국가적 행사에 엉터리 태극기라니 말이나 됩니까!"
지난 1일 밤 매일신문사 당직실에는 낮에 있었던 '건군 55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때 쓰인 태극기가 엉터리라는 제보전화가 연이어 걸려왔다.
이날 아침 노무현 대통령이 탄 무개차 앞에 달린 소형 태극기 괘의 모양이 틀렸다는 내용이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불량 태극기 사건은 '눈 밝은' 제보자들이 없었다면 자칫 역사속으로 묻힐 뻔한 일이었다.
다음날 중앙지 조간 신문에도 틀린 태극기 사진이 버젓이 실릴 정도였으니…. 보기에 따라서는 이번 사건은 단순한 실수에 따른 '해프닝 정도'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엉터리 태극기가 대통령이 탄 차를 장식하기까지의 과정을 역으로 취재해 들어가면서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군 기강 해이와 보신주의에서 비롯됐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2일 아침 군의 해명을 듣기 위해 육군본부 공보과, 국방부 공보실, 제병지휘부, 2군 사령부 공보실 등에 다이얼을 돌렸지만 전날의 일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했다.
"지적사항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 국군의 날 행사를 담당한 제병지휘부 이모 공보처장은 사실여부를 확인한 뒤 풀죽은 목소리로 오류를 인정했다.
하지만 다음에 튀어나온 말은 기자의 귀를 의심케했다.
"태극기가 불량품일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같은 군대 내에서 일어난 일인 만큼 잘잘못을 가려서 뭐 하겠습니까. 관계자들이 싫은 소리 좀 듣겠네요".
청와대에 보고됐느냐고 물었더니 "(국군의 날 행사가)국방부 행사지, 청와대 행사입니까?"라며 오히려 볼멘 소리를 냈다.
한 마디로 재수가 없어서 생긴 일쯤으로 치부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날 사건은 본지 보도가 나간 이후 3일자 전국 각 신문에 큼지막하게 실리면서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국정감사 자리에서도 거론됐다.
태극기를 구입한 담당 부대 고급간부도 호된 질책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한가지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불량 태극기가 달린 차량을 타고 대통령이 사열받는 장면이 전국 대부분 일간지에 게재되었고 방송에서 생중계까지 했지만 유독 본지에만 제보전화가 이어졌다는 점이다.
대구 사람들의 애국심이 강한 탓일까? 아니면 다른 지역의 태극기 사랑 의식이 약해서였을까?
사회1부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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