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표준어 규정'이제는 바꿔야(하)-언어정책의 방향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현행 표준어 규정의 대안은 뭘까. 결론적으로 국어학자들은 방언의 공통성을 모아 표준어의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한민족 방언 가운데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공통성이 가장 많은 현대어'를 표준어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방언까지 아우르는 공통어 언어정책은 무엇보다 우리 말이 풍성해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비표준어란 굴레를 쓰고 우리로부터 멀어져 갔던 말들이 일상 언어생활이나 인터넷 등에 자연스럽게 쓰이면서 우리의 언어자원을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방언에 폭발적인 관심을 나타내는 청소년들의 성향을 감안한다면 국적불명의 언어가 판을 치는 인터넷 언어 정화에 긍정적 효과도 기대된다.

이를 위해 먼저 '표준어=정확하고 세련된 말', '방언=부정확하고 촌스런 말'이란 인식부터 떨쳐버려야 한다.

최병현 호남대 영문과 교수는 "무엇을 표준화한다는 것은 컨트롤하고 지배한다는 뜻을 내재적으로 갖고 있다"며 "지금은 표준화보단 다양성을 추구해야 하는 시대"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표준어보다 오히려 방언이 우리의 언어 생활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며 "각 지방의 방언에는 그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사람에게 인권이 있듯 언어에도 권리가 있다는 최 교수는 언어를 표준화하고, 그 표준화된 언어에 힘을 부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공통성이 가장 많은 현대어라는 개념은 3가지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언어간에 공통적인 요소가 많은 언어, 한민족 언어 내에서 방언간의 공통성, 지역사회의 다양한 성원간(계층간)의 공통어로 구분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민족언어의 규범이 되고 또 잘 다듬어진 말인 표준어의 기반이 되는 공통어는 바로 '한민족 언어 내에서 방언간의 공통성'을 토대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직도 우리 나라는 서울 중심적인 표준어 규정을 고집하고 있지만 대다수 나라들은 공통어를 언어정책으로 삼고 있다.

일본은 수도 중심의 표준어 정책에서 탈피, 민중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방언을 가려 모아서 사용하는 공통어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또 일부 나라는 규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러 방언 가운데 가장 큰 세력을 가진 문자나 언어가 자연스럽게 표준어의 기반이 되는 일도 있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종교개혁으로 유명한 루터의 독일어가,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는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등이 작품에서 사용한 피렌체시의 언어가 표준어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또 북한은 조선어 철자법 총칙에서 "표준어는 조선 인민 사이에 사용되는 공통성이 가장 많은 현대어 가운데서 이를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역 언어(방언)를 존중하는 공통어 언어정책 채택에 앞서 반드시 선행돼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방언 가운데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공통성이 많은 현대어에 대한 광범위하고도 철저한 현지조사다.

언어분포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공통어 정책은 사상누각과 같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현행 표준어 규정에 대해 우리나라 언어정책을 맡고 있는 문화관광부는 '유연한' 입장을 나타냈다.

유병한 국어정책과장은 "언어 규정이 결코 변할 수 없는 금과옥조는 아니다"고 전제하고 "행정수도 이전 문제 및 남북통일 대비 등과 같은 언어환경 변화에 따라 표준어 등 언어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이 대원칙"이라고 밝혔다.

그는 "표준어 규정 등 언어정책을 바꾸려면 우선 언어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며 "표준어는 사회 구성원의 의사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만큼 국민적 공감대 형성도 필수"라고 말했다.

또 유 과장은 방언에 대한 국가적인 차원의 보존과 발굴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며 제정을 추진 중인 국어기본법에 표준어.방언 문제 등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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