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웅, 부우웅'. 8일 오전 6시 대게잡이 전진기지인 울진 후포항의 하루는 울진군과 한국어망협회 소속 동해 침체어망 인양작업선(바다 속에 가라앉은 그물을 건져올리는 배) 수일호의 뱃고동 소리로 시작됐다.
작업 해역은 동해의 이어도로 불리는 '왕돌초' 주변 해역. 왕돌초는 최저 수심이 5m로 맑은 날 육안으로도 식별이 가능한 반경 30km 크기의 해저 암초. 이곳 주변 해역은 한.난류가 교차하는 탓에 회유성 어종들이 산란, 서식하는 동해 최고의 황금어장이다.
때문에 어민들이 마구 몰려들고, 그런 만큼 어장 황폐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황금어장을 송두리째 빼앗긴 한.일어업협정 이후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번 침체 어망 인양작업도 이를 안타깝게 여긴 울진군이 해양수산부에 건의해 국비를 일부 지원받으면서 시작하게 됐다.
왕돌초는 후포항에서 동쪽 13마일 해상에 있다.
보통 어선으로 2시간 남짓한 거리. 엷게 깔린 어둠을 뒤로 한 채 승선한 100여t급 작업선은 육중한 몸에 비해 날렵하게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얼마를 달렸을까. 오전 9시쯤 갑자기 '위이잉'하는 부저 소리가 들려왔다.
직감적으로 수면 아래에 떨어뜨려 놓은 길이 1.5m짜리 갈쿠리에 뭔가가 걸려들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선원들이 배 뒷전에 몰려들었다.
크레인이 둔탁한 기계음을 내며 로프를 끌어올리자 폐그물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생선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호흡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역한 냄새였다.
500여m의 자망에 수백마리의 대게가 몸통이 떨어져 나가고 다리가 잘린 형상들을 한 채로 뒤엉켜 있었다.
이들 사이로 지느러미가 뜯기고 내장이 터져나오고 눈알이 썩은 생선들도 눈에 띈다.
배에 알을 가득 품고 있는 대게의 암컷(일명 빵게)이 부지기수로 걸려 죽어있는 모습에 저절로 눈이 감겼다.
대게 수컷은 6월부터 10월까지 금어기다.
물론 암컷은 수산자원 보호차원에서 연중 포획이 금지돼 있다.
때문에 선원들은 조심스럽게 그물에 걸려 있는 대게들을 뜯어내 바다로 보냈다.
모두들 날랜 동작이다.
하지만 선원들의 표정은 침통하기만 하다.
놓아준 대게의 생존율이 거의 희박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폐그물에 걸려 있는 대게의 상당수는 이미 폐사 상태에 있는 데다 살아있는 것들도 다리가 뜯겨져 나가는 등 상태가 정상적이지 못하다.
"빵게 한 마리가 품고 있는 알은 대게 4만~7만개쯤 됩니다.
이 중 50%만 부화해도 개체 수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폐그물에 걸려 죽고 말았으니. 폐어망 문제, 정말 심각합니다". 동승한 군청 수산과의 김동영(38)씨가 속이 타는 듯 보다못해 울분을 토해냈다.
스페인 라스팔마스에서 오랜 선원생활을 했다는 박성재(45) 갑판장도 "수산 선진국에서는 어민들 스스로 폐어망 및 어구를 수거해 육지에서 소각해 처리한다"며 어민들의 자성을 촉구했다.
대게와의 씨름은 30여분 만에 끝이 났다.
등줄기엔 축축이 땀이 뱄다.
얼마가지 않아 부저가 또 다시 울렸고 갈쿠리를 올리고 내리는 작업은 계속됐다.
어느덧 오후 4시. 인근 해역에서 침체어망 인양에 동원됐던 4.8t급 선창호 등 6척의 소형 어선들이 하나 둘씩 수일호 부근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거해 온 폐어망을 옮겨 싣고 귀항을 하기 위해서다.
이날 하루 동안 수거한 폐그물만도 무려 5t. 웬만한 중형 선박의 갑판을 모조리 채울 만큼의 엄청난 양이다.
선장 장석남(66)씨는 "오늘은 왕돌초 안쪽 해역이라 그나마 양이 적은 편"이라며 바깥 해역은 상태가 더욱 심각하다고 말했다.
어느새 어둠이 내렸다.
귀항을 알리는 고동이 울리자 잔잔하던 파도가 일렁거렸다.
바다를 살려달라고 마치 애원이라도 하는 듯. "바다 정화 사업은 한 두푼의 경비가 드는 게 아닙니다.
기초자치단체 혼자서 감당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나 시.도 차원의 항구적인 대책 수립이 필수적이죠. 바다가 죽으면 모든 게 끝장이라는 사실을 왜 모를까요?" 어망협회 최일선씨는 한숨지었다.
울진.황이주기자 ijhw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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