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곧 막이 내릴 무대

찬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가 어제였다.

가을의 중턱을 넘어서자니 감기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그 대열에 나도 엉거주춤 끼여서 며칠째 앓고 있다.

누구나 아파보면 그때서야 안다.

한 번뿐인 인생을 좀더 뜻있게 살아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높푸른 하늘에 유유히 흐르는 구름을 보아도, 친구의 전화가 와도, 기쁘지 않고 온몸에 기운이 떨어져 착 가라앉을 때는 만사를 제쳐두고 쉬어야 한다.

그런 날은 세상으로 향한 욕심의 창문을 닫고 고요히 명상에 잠겨볼 필요가 있다.

삶이 꽉 채워지기를 소망하는 게 아니라 여백을 사랑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으로 지나온 날을 돌아보며 조금씩 비워나가야 함이다.

마음을 추스르고 언뜻 떠오르는 책을 찾았다.

유별나게 얇고 작은 책, 미국의 칼럼니스트이자 유명 작가인 애너 퀸들런의 '어느날 문득 발견한 행복'이다.

참으로 특이한 것은 이 책의 어디에도 쪽수가 매겨져 있지 않다.

목적지를 향하되 여정을 사랑하라는 그의 말을 떠올려본다면 쪽수에 얽매이지 말고 그냥 한 장 한 장을 즐기며 읽으라는 뜻인 것 같다.

저자는 자신이 열아홉 나이의 철없는 여대생이었을 때 마흔 살의 젊은 어머니를 암으로 잃고서야 비로소 생의 비밀을 깨닫게 되었으며,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야말로 신이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한다.

그래야지 우리에게 허락된 현재의 며칠, 몇 시간, 몇 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안다는 것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 바로 곁에 있는 행복을 발견해 보자. 부와 명예가 내 삶에 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것은 우리를 지켜주는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할 뿐이다.

저자는 긴 말을 하지 않는다.

인생이 짧기에 더욱 찬란하다며 오늘 하루, 이 소중한 하루를 잊은 채 바쁘게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다가와서 속삭인다.

"아기의 귀에 난 솜털을 보라. 뒷마당에 앉아서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어라.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라. 인생을 곧 막이 내릴 무대로 여겨라. 그러면 기쁨과 열정을 품고 살아가게 될 테니까".

김경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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