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속타는 농심 커지는 한숨

황금 들녘에 수확의 기쁨은 온데간데 없고 한숨소리만 가득하다.

추곡수매가는 동결됐고 생산비도 못건지는 상황에서 23년만의 대흉년을 맞은 농심은 숯덩이마냥 타들어 간다.

오죽하면 자기의 피붙이나 다름없는 벼를 갈아엎을 수밖에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농촌은 우리의 삶의 기둥이요 뿌리이다.

책상머리 행정으론 해결책이 없다.

농촌을 시한부 환자로 내몰아놓고 마냥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포기해선 안된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정부가 들어야 한다.

흉년이 들면 민심이 흉흉해지고 농가부채에 시달리는 농민들은 쌀시장 개방 저지와 농가부채 탕감 등을 외치며 너도나도 길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바라만 봐도 배부르다던 논밭은 옛날 얘기다.

추락을 거듭하는 땅값은 시름만 더할 뿐이다.

대도시 아파트 가격이 한달새 1억원 올랐다는 소식에 느낌조차 없다.

한 농민은 "작년 겨울 1천200평의 논이 3천400만원에서 올해 2천200여만원으로 떨어졌다"며 한숨짓는다.

다른 농민은 "한 필지에 40㎏들이 벼 70가마가 나왔는데 올해는 26가마도 안된다"며 "언제까지 이런 짓을 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나마 도정 전에는 가마 수라도 헤아릴 정도지만 쭉정이가 절반이 넘는 마당에 수확량을 계산한다는 것이 우스울 따름이다.

정부나 언론에서 쌀 생산량이 20~30% 감소했다고 떠드는데, 직접 논에 나와 이삭을 만져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한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세상은 온통 거짓말 투성이다.

쌀 개방만은 막겠다던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아직 귀에 쟁쟁한데 이미 우리네 들녘은 자포자기하고 말았다.

뙤약볕에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농민들의 얼굴이, 그리고 마음이 머지않아 우리 자신의 모습일는지도 모른다.

내년 4월, 17대 총선이 치러진다.

농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사탕발림식 '헛약속'들이 또 얼마나 난무할까. 우직한 농민들의 참을성도 이젠 한계에 이르렀다.

흘린 땀만큼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노력한 만큼만 돌려달라는 농민들의 소리없는 절규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회2부.박동식기자parkds@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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