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 26일 부산외국어대학에 가서 비교문화연구소 주최로 '비교문학연구의 방향과 과제'라는 강연을 했다.
서울의 한국외국어대학이 독존하지 않고, 부산에도 외국어대학이 있는 것은 다행스럽고 자랑스럽다.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을 두 사립대학에서 감당하면서, 세계화를 선도하는 인재를 양성하려고 애쓴다.
국가를 경영하려면 외국어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조선왕조는 사역원에 중국어, 만주어, 몽고어, 일본어 역관을 두었다.
대한제국은 일본어와 중국어 외에, 영어, 불어, 러시아어, 독일어를 공부하는 학교를 각기 개설하고, 그 모두를 합쳐 한성외국어학교를 만들었다.
식민지 시대에는 외국어 공부도 타격을 받아 영어와 중국어를 전공하는 학과만 가까스로 존속했다.
대한민국은 국립대학을 만들면서 식민지 시대의 유산에다 불어와 독어를 공부하는 학과를 보태는 데 그치다가, 근래에 와서 스페인어, 러시아어, 또는 일본어를 추가했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멀리 갈 것 없이 일본과 중국의 경우를 들어보아도 차이점이 분명하다.
일본의 동경대학, 중국의 북경대학 양쪽 다, 서울대학은 물론 한국의 어느 국립대학에도 없는 인도어와 아랍어 학과를 두었다.
북경대학에는 더 많은 외국어 학과가 있다.
일본은 도쿄과 오사카, 중국은 베이징과 상하이 양쪽에 국립 외국어대학을 설치해 힘써 키운다.
일본 동경과 중국 북경 두 곳의 외국어대학에서 강연을 하는 기회가 있어, 학교를 돌아보고, 교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 다 선망의 대상이 되는 명문대학이다.
국내외의 교수진을 제대로 확보한 것은 물론이고, 교육, 연구, 생활 등을 위한 시설이나 여건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동경외국어대학에는 60명 정도의 연구교수가 강의 부담 없이 연구의 자유를 누리는 아시아아프리카 언어문화연구소가 있다.
북경외국어대학의 교수주택은 다른 대학보다 월등하게 좋다.
일본.중국과 한국이 왜 그렇게 다른가? 외국어의 용도에 대한 견해차 이외의 다른 이유는 찾을 수 없다.
세계 많은 나라와 대등한 교류를 넓게 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 실정이다.
몇몇 선진국을 뒤따르는 데 필요한 외국어를 가르치는 데만 국가 예산을 쓰는 후진국 시절의 관행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나라의 위상이 아주 달라진 것을 교육에서는 인정하지 않아, 대외 활동의 경쟁력을 갖추는 데 차질을 빚어내고 있다.
사립대학의 재력으로 외국어대학을 키우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다.
교수진을 확보하고, 교육 여건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저임금도 마다하지 않는 외국인을 불러다가 초보 회화나 연습하고 말 수는 없다.
그런데도 정부에서 감독하고 언론에서도 평가의 채찍을 휘두르면 잘 될 것인가 ? 경쟁력 없는 분야는 퇴출시키는 구조조정을 하면 부실을 막을 수 있는가 ?
한국외국어대학에는 없고 부산외국어대학에만 있어, 전국 유일인 학과가 미얀마어과와 중앙아시아어과이다.
중앙아시아어과를 보면, 중앙아시아 터키계 여러 민족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 튀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의 언어 및 역사, 문화, 정치, 사회를 가르친다고 한다.
그 과업을 만족스럽게 수행하려면 얼마나 많은 투자와 노력이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카자흐스탄은 가본 곳이다.
최상위 두 대학, 알마티의 카자흐스탄대학과 크질오르다대학에 한국학과가 있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학은 더 많다.
카자흐스탄대학 한국학과 창설 2주년을 축하하러 가서 두 대학에서 강연을 하고, 크질오르다대학의 명예교수가 되기도 했다.
그 기회에 많은 것을 살피고 들었다.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을 공부하는 것만큼 우리도 그 나라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부산외국어대학에 비교문화연구소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외국어대학에서 해야 할 연구에서 비교문화가 특히 소중하다.
강연을 하면서 비교문화의 주요영역인 비교문학을 위해 내가 노력해온 바를 말하고, 더 큰 일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개별학과에서 하는 작업을 총괄하고 심화하는 연구소 교수가 있어야 그럴 수 있는데, 자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국립 외국어대학을 신설하라는 것은 아니다.
사립 외국어대학을 국가에서 적극 지원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달라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부산시가 앞서는 것이 지방자치를 제대로 하는 적극적인 자세이다.
(서울대교수.국문학)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