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사이드의 타계와 쿳시의 노벨문학상

지난 9월 말 에드워드 사이드가 68세로 타계하여 너무나도 애석했는데 이어 10월 초 63세의 J M 쿳시가 노벨문학상을 받아 너무나도 기뻤다.

왜냐하면 이른바 포스트콜로니얼리즘(탈식민지주의)으로 불리는 현대문학의 중요한 조류를 형성한 이론가가 타계했으나 이어 그 조류의 중요한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이 수여되었음은 식민지주의 극복의 문제가 세계 현대문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위원회는 쿳시가 '인종차별과 서구 문명의 천박한 윤리관에 대한 비판적 저술활동'을 했다는 이유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그러한 찬양은 사이드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이드는 지금은 지구상에서 없어진 팔레스타인에서 1935년 태어난 미국 문학평론가이자 역사가로서 현대의 역사가 서양의 제국주의 침략을 그 본질로 하는 만큼 그것의 극복이 인류의 과제임을 역설했다.

그 5년 뒤인 1940년 남아프리카에서 네덜란드계 백인으로 태어난 쿳시는 남아프리카의 식민지 침략의 역사 탐구를 통해 극명하게 묘사하여 남아프리카 사람들은 물론 전 인류의 각성을 촉구했다.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정책이라는 주제를 다루어 이미 1991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남아프리카 출신 여류 작가 나딘 고디머와 함께 쿳시는 식민지 문제의 극복을 문학의 주제로 삼은 대표적인 작가로 주목받아 왔다.

쿳시는 고디머와 달리 인종분리정책을 추진한 백인의 심리묘사로 접근한 점에서 그 비판에 더욱 신랄했다.

그러한 무거운 주제를 기발한 플롯과 메타 픽션으로 형상화한 지식인 소설을 쓴 쿳시는 결코 대중적이지 않아 이해에 어려움을 주지만 그의 주제는 한 문장이 두 줄을 넘지 않는 단문처럼 명확하다.

그가 '철의 시대'에 쓴 다음 말로 그의 주제는 요약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범죄가 행해졌다.

오래 전부터 나는 그 속에서 살아왔다.

그것은 내가 받은 유산의 일부이다" 이 말은 인종차별이 극심하여 미국으로 망명한 딸에게 남아프리카에 남는 아버지가 하는 말이다.

아버지는 역사의 수치를 고스란히 지고서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다시 모색한다.

쿳시의 데뷔작인 1974년의 '다스크란드'는 제1부에서 20세가 베트남 전쟁의 보고서, 제2부에서 18세기 남아프리카의 침략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18세기로부터 현대까지 제국주의 침략의 합리화를 위해 역사가 어떻게 날조되었는지를 묘사했다.

이러한 신화화의 과정을 사이드는 1978년 '오리엔탈리즘'이란 책에서 역사적으로 분석한 바 있는데, 쿳시의 작품은 그 저술에 앞섰다.

두 번째 작품인 '돌의 여인'도 역사라는 신화조작의 과정을 남아프리카 농장의 고독한 여인이 아버지를 죽이는 끔찍한 이야기를 통해 묘사했다.

또한 식민지 합리화의 고전 소설인 '로빈슨 크루소'를 패러디한 '적 또는 포'를 통하여 서양문명에 대한 이의신청을 제기하고 다른 문화에 대한 몰이해를 약자의 입장에서 비판했다.

'야만인을 기다리며'에서는 제국의 충실한 하인인 치안판사가 식민지 전쟁의 잔인성을 목격하고 제국의 적이 되는 과정과 함께 흑인들이 야만화되어 가는 과정을 묘사했다.

이는 1994년 남아프리카에서 흑인 정권이 수립된 뒤에도 인종분리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남아 그것이 흉악 범죄를 증대시키고 백인에 대한 분노를 초래했음을 예상한 것이었다.

쿳시는 최근작인 '추락'에서 그러한 비극적 상황을 여학생과의 스캔들로 추락하는 노교수와 흑인들에게 윤간당한 그의 딸을 통하여 묘사했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그가 추구하는 인간상은 국가나 사회에 종속되지 않고 자립하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동서양이라는 제국주의적 구분이나 국가나 전통과 단절된 인류 보편성을 추구하는 인간을 추구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사이드나 쿳시는 대중성이나 상업성과 타협하지 않는 점에서도 공통된다.

사이드는 아랍의 테러리즘과 미국의 제국주의에 동시에 저항하여 양측의 미움을 받았으나 죽기까지 그 양심을 외롭게 지켰다.

쿳시 역시 남아프리카의 현실에 비판적이고 특히 문학상이 갖는 상업성을 싫어하여 은둔하는 작가로 저명하다.

그런 점에서도 두 사람은 지식인 내지 문학인이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모범을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지식인, 문학가를 대망함은 필자만의 꿈이 아니리라.

박홍규(영남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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