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섬유 이대로 둘것인가(3)-밀라노 프로젝트 5년(중)

지난 5월말 대구를 첫 방문해 1단계 밀라노프로젝트(1999~2003년) 평가 작업에 돌입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당초 예정했던 7월말이 훨씬 지난 현재까지도 평가를 끝내지 못하고 있다.

박준경 KDI 선임연구원은 "밀라노프로젝트 개별 사업에 대한 총체적 평가 자료가 전무해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며 "업계 설문 조사가 끝나는 이달 말에야 정식 보고서가 나올 것 같다"고 밝혔다.

대구시 담당 공무원도 평가 자료를 요구하는 KDI측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못해 무안했다고 고백했다.

단일 사업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3천670억원(현재까지 2천995억원)의 국비가 투입된 국책사업에 어떻게 변변한 평가 자료 하나 없을까. 지역 섬유업계는 밀라노프로젝트 평가가 단순히 주관기관 하나에 끝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밀라노프로젝트 사업의 1차 책임은 프로젝트 개별 사업의 실무 담당자인 주관기관이 져야 하지만 정부 주무부서인 산업자원부와 대구시도 여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이들 양 기관은 매년 한 차례씩 밀라노 프로젝트 개별 사업의 사전, 사후 평가를 해 왔지만 단 한번도 제대로 된 평가를 실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역 섬유업계는 또 밀라노프로젝트 평가가 단순히 '평가를 위한 평가'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1단계에 이은 2단계 밀라노프로젝트(2004~2008년; 포스트밀라노)가 우리 눈앞에 다가온 때문이다.

업계는 1단계 5년의 성공과 실패 여부를 분명하게 따지되 새로운 평가시스템을 확립해 포스트밀라노는 지난 5년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밀라노프로젝트 평가 제대로 했나

1단계 밀라노프로젝트 양대 주관기관인 한국섬유개발연구원(섬개연)과 염색기술연구소(염기연)는 지난 5년간 신제품개발센터, 섬유정보지원센터, 염색실용화센터, 니트시제품센터 등의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동시에 산자부 보조금 형태의 목적사업을 통해 연구개발 과제를 수행해 왔다.

그러나 지역 섬유업계는 양 주관기관의 개별과제는 단 한번도 제대로 된 평가를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주관기관은 "목적사업비의 30%를 주관기관 운영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산업발전법에 따라 운영비 마련을 위한 형식적 연구개발로 일관해 왔다는 것이다.

섬개연이 지난 6월초 KDI에 제출한 1단계 밀라노프로젝트(1999~2003년) 사업추진 현황에 따르면 1999~2002년까지 지난 4년간 섬개연 목적사업에 따른 개발제품은 191개 소재, 425개 제품으로 판매금액은 273억1천115만원, 수입대체효과는 1천567억원, 신규고용창출은 930명이다.

밀라노프로젝트의 섬개연 목적사업 예산이 5년간 160억원임을 감안한다면 놀랄 만한 사업 성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한발짝만 내부로 들어가면 이같은 외형적 수치는 철저한 내부 평가를 거치지 않은 단순한 숫자놀음에 불과함이 금방 드러난다.

섬개연이 지난 한 해 목적사업으로 추진한 8개 과제 중 '자카드직편기를 활용한 기능성 인테리어 및 의류용 직편물개발' 과제를 보자. 섬개연은 이 과제를 통해 10만 야드의 인테리어 제품을 생산해 2억원의 판매실적을 올렸고 수입대체 효과는 70억원, 고용창출 효과는 130명이라는 자체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이 과제에 참가한 업체는 해양섬유 단 1개뿐인 실정으로 이 회사 이현철 과장은 "아직 시장 형성이 제대로 안돼 판매액이 2억원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해양섬유 전 직원이 15명에 불과한 상황에서 어떻게 130명의 고용창출이 예상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중공사의 복합화에 의한 경량보온 소재 개발' 과제를 수행해 50억원의 수입대체효과와 10명의 신규고용을 창출했다고 보고한 섬개연 가공사개발팀 송민규 팀장도 "KDI에서 요구해 어쩔 수 없이 산출한 자료"라며 "정확한 근거는 없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섬개연 목적사업 자문위원 25명 중 한명이었던 동국무역 권순택 과장은 "연구원 요청에 따라 기술조언은 해 줬지만 사전, 사후 평가 단계엔 참여하지 못했다"고 했으며 또 다른 자문위원이었던 경북대 최재홍 교수도 "자문단은 사전, 사후 평가 권한이 없어 제대로 된 평가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염색기술연구소 목적사업(215억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염기연은 지난 5년간 77개 연구과제를 수행했지만 업계에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했다

업계는 하나의 연구과제가 제대로 성과를 내려면 원사, 직물, 염색 등 지역 전 섬유업종이 참가해 공동 연구에 매달려야 하지만 염기연 목적사업은 단일 업종 위주로 형식적 연구과제 추진에 그쳐온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염기연이 2000년 1억200만원, 2001년 1억1천800만원 등 거의 매해 추진해 온 염색산업 정보화 구축사업은 지역 섬유업계로부터 섬유개발연구원의 정보지원센터 사업과 예산 중복성이 강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평가시스템을 혁신하자

양 주관기관의 연구개발 과제가 형식적 연구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 이유는 제대로 된 사업 평가 시스템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한국섬유개발연구원과 염색기술연구소 등 밀라노프로젝트 각 주관기관은 1년에 두차례 사업 평가를 받는다.

산업자원부와 대구.경북 섬유산업 육성추진위원회의 사전.사후 평가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산자부와 대구시의 평가 시스템은 지난 5년간 지역 섬유업계의 끊임없는 비판을 받아 왔다.

산자부 평가요원들은 기술적 소양을 갖추지 못해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리지 못했다.

1년 사업의 총체적 흐름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짚어내는 일은 전문가조차 힘든 일인데 산자부 평가요원들은 이같은 역량이 전혀 없었다는 것.

대구시장과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장이 공동 위원장을 맡고 있는 대구.경북섬유산업 육성추진위원회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실무 담당자가 아니라 지역 주요 섬유단체장들로 구성돼 기술적 마인드가 부족한 데다 평가 대상인 밀라노프로젝트 주관기관의 이사장들까지 위원으로 참가해 애시당초 감사 기능을 수행할 수 없었다.

실제 밀라노프로젝트에 대한 총체적 평가는 포스트밀라노 기획안 수립과정에서 지난해와 올해 각 한차례씩 제기됐지만 주관기관들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정훈 대구.경북 직물조합 이사장은 "밀라노프로젝트 평가를 두고 국정감사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평가만 제대로 했어도 밀라노프로젝트에 대한 대내외적 불신이 이처럼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포스트 밀라노 예산 규모를 놓고 마찰을 빚고 있는 KDI와 대구시도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에 철저한 사전, 사후 평가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는 대명제에는 의견이 일치했다.

현재 논의되고 가장 유력한 방안은 지역 산업기술평가원을 설치하는 것이다.

중앙 모니터링 시스템으로는 지역 산업에 대한 개별 평가에 한계가 있어 지역 자체에서 혁신적 평가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섬유뿐 아니라 메카트로닉스, 바이오, 나노 등 지역 4개 전략 산업을 동시에 관장할 평가기관으로는 경북대 테크노파크 또는 대구.경북개발연구원이 고려되고 있으며 정부는 이에 대한 예산으로 50억원을 책정했다.

이와 관련해 섬유패션기능대학 이용근 학장은 "평가기관이 섬유 지식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을 경우 충분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며 "직물, 염색, 패션, 섬유기계 등 각 분야별 실무자로 구성된 전문기구 설치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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