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대산 단풍

가을, 사람들의 표정이 왠지 어둡고 쓸쓸하다.

채워지지 않은 욕망의 빈자리가 저물어가는 한해의 길목에서 더욱 커보여서일까.

하지만 잎새는 다르다.

조만간 낙엽이라는 이름으로 운명을 다하지만 이맘때쯤 잎새는 어김없이 형형색색으로 화사한 자태를 뽐내 싱그럽고 정겹기만 하다.

사람들이 낙엽을 보면서 애틋해 하는 이유는 살같이 흐르는 세월 탓도 있겠지만 가을을 무대로 펼쳐지는 오색 빛깔 대자연의 패션쇼가 그다지 길지 않기 때문이다.

은은한 분홍빛에서 강렬한 자줏빛까지. 제각각 고별무대를 찬란하게 꾸미려는 단풍으로 온 산이 떠들썩하다.

지금 그들이 우리들을 초대한다.

만산홍엽(滿山紅葉). 이 계절의 축제 속으로 들어가 허전한 마음을 달래보거나 몸에 붉고 노란 빛이 흠뻑 배도록 이 산 저 산을 찾아보는 것도 좋으리. 그러다보면 또다른 삶의 희망을 가슴 속에 새길 수도 있지 않을까.

단풍의 맛을 한껏 느끼려면 길든 짧든 산행이 뒤따라야 하겠지만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로 이어지는 단풍길은 특별한 산행 없이 승용차로도 즐길 수 있다.

고풍스러운 사찰과 주변의 단풍이 어우러져 가을이 더욱 깊게 느껴진다.

월정사에 가기 전 진고갯길을 들러보자. 단풍 드라이브 코스로는 더할나위 없다.

오대산 이정표를 따라 달리다보면 국립공원관리사무소를 만난다.

이 곳 갈림길에서 우측도로를 따라 7㎞ 가량을 들어가면 진고개. 이곳에 차를 세워두고 주변을 둘러보자. 오대산 줄기마다 이어지는 단풍의 향연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곳 단풍감상은 맛보기.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자.

국립공원관리사무소 옆 갈림길에서 왼쪽 도로를 따라 이제 월정사로 향한다.

오대산 매표소를 지나 월정사에 이르기까지 도로 양 옆으로 500년을 이어온 전나무숲이 1㎞ 가량 펼쳐진다.

한없이 뻗은 나무들 사이로 자연의 내음이 물씬 풍긴다.

코끝이 생그럽다.

때마침 월정사에서 장엄한 북소리가 바람에 실려 사방으로 울려퍼진다.

알록달록한 단풍에 들떴던 마음이 어느새 고요해진다.

북소리에 심취한 그 짧은 순간만은 자연 속에 오직 나만이 서있는 듯 하다.

이제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약 7㎞를 달려간다.

도로 옆 계곡으로 단풍의 물결이 넘실댄다.

20분 가량 계곡 단풍에 눈길을 빼앗기다보면 어느듯 상원사 앞 주차장. 차에서 내려 몸을 좀 풀자. 오랜 운전으로 몸이 조금 뻐근할테니. 이제 연등으로 이어진 고갯길을 따라 산책하는 마음으로 10여분만 걸으면 상원사에 도달한다.

신선한 약수물에 목을 축이고 긴 호흡 한번 해보자. 사찰 처마 끝으로 울긋불긋 산들이 하늘과 맞닿아 누구도 그려낼 수 없는 한폭의 풍경화를 자아낸다.

겸사겸사 상원사 동종도 한번 보고가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란다.

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가는길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2시간 가량을 달리면 만종분기점이 나온다.

이 곳에서 강릉 방향의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해 40분 가량을 가면 진부 IC. 진부에서 고속도로를 내려와 오대산 이정표를 따라 국도 6호선으로 접근하다 지방도 446호선으로 진입한다.

◆맛집

산을 찾았으니 싱싱한 산나물을 맛보고 가야 덜 허전하지 않을까. 월정사에 들어가기 전 비로봉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 산채정식은 오대산에서 캔 다채로운 산나물로 꾸며져있다.

각양각색 반찬 가짓수만 30여종. 반찬상을 받으면 입보다 눈이 먼저 즐겁다.

1인분에 1만3천원. 간편하게 먹을거리를 해결하고 싶다면 6천원짜리 산채비빔밥도 괜찮다.

033)332-6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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