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30분. 대부분의 초.중학교는 적막에 휩싸인다
학생도, 교사도, 교장도 없다.
학부모들이 보기엔 이르지 않나 싶어도 교사들은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서 8시간 일하고 퇴근하는데 뭐가 잘못됐냐"고 되묻는다.
퇴근 후엔 뭘 하느냐고 몇몇 교사들에게 물었다.
"각양각색이죠. 남자들 중엔 테니스 치는 사람이 많고, 다른 취미활동을 하기도 하죠. 여자들이야 대부분 가사와 육아 때문에 퇴근 후가 더 바쁘죠. 학생들과 동아리 활동 같은 걸 하거나 나머지 공부를 시키는 분들도 적잖습니다".
공부나 교재연구 같은 건 않느냐고 다시 물었다.
"교직생활 초년기엔 퇴근한 뒤 책도 읽고 교과서 연구도 하고 했죠. 4, 5년 지나니까 업무에 치여서 비는 시간이나 짬 날 때 하는 정도가 되더군요. 승진해서 교장 되겠다는 욕심 없으면 뭐 공부할 게 있나요?".
학교가 문을 닫는 시간, 그 때부터 본격적인 교육 전쟁은 시작된다.
학생들이 빠져나오는 초.중학교 교문 앞, 심지어 운동장 안까지 학원 버스들이 줄을 잇고 서 있다.
격차도 거기서부터 벌어진다.
어느 학원으로 가느냐, 어떤 프로그램에 어느 강사에게 강의를 듣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미래 상당 부분이 판가름난다.
교육은 결코 교사들의 출.퇴근시간에 따라 시작되고 끝나는 게 아닌 것이다.
학교가 문을 닫아도 학원은 언제나 열려 있다.
퇴근시간 이후 전화를 걸면 신호음만 뚜 뚜 울리는 학교 교무실과 달리, 학원에선 밤 10시가 넘어도 집으로 전화를 걸어온다.
"귀댁의 자녀가 오늘 강의 한 시간을 빼먹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물어봤는데 게임방에 갔다더군요. 쪽지시험을 본 결과 성적은 그대로 유지되는 편입니다.
조금 더 올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보내시겠어요?"
한 유명 학원 강사는 자신을 이류 대학생이었다고 했다.
"사범대 재학 시절 상위권 친구들은 모두 학교로 갔죠.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두드렸습니다.
그 후론 죽어라 노력했죠. 교재는 시중에 나오는 모든 종류를 달달 외울 정도로 연구했습니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유머, 엽기, 게임 같은 인터넷 사이트 서핑은 지금도 매일 하고 있습니다".
공.사교육의 극단적인 차이 속에 사교육 팽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교육당국은 갖가지 사교육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쯤이라면 공교육 내부의 경쟁력 약화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
무엇이 일류 대학생이었던 교사들을 이류였던 학원 강사들보다 취약하게 만드는지, 학부모의 신뢰와 만족이 학교보다 학원에 더 쏠리게 하는 이유는 무언지, 이런 가운데도 교사들의 불만은 어째서 해소되지 않는지.
"최근 나온 방안 가운데 학원 강사를 학교로 불러들인다는 얘기에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교육계에 몸담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었는지 분노가 일었지만, 주위에 공감하는 학부모가 적잖은 걸 보면서 교사들의 경쟁력이 이렇게 떨어졌나 싶어 허탈했습니다.
". 한 중학교 교사는 "교육계 내부에서 자기 희생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수요자 중심의 정책 마련, 공교육 투자 확대 등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사교육이 아니라 공교육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사진 김태형기자 tjkim2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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