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모랑 자녀랑-아빠가 읽어주는 전래동화(석새짚신)

옛날 어느 곳에 가난한 농사꾼이 산골 밭에 구메농사를 짓고 살았어. 하루는 밭일을 하고 고개를 넘어오다가 마루턱에서 잠깐 쉬게 됐지. 쉬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산신령님이 나타나서 마구 야단을 치더래.

"너는 어찌하여 애매한 목숨을 함부로 해하였느냐? 오던 길을 되짚어 가 보면 네가 해코지한 불쌍한 목숨이 있을 것이니라".

잠을 깨서 이상하게 여기고 오던 길을 되짚어 가 봤어. 가 보니 아니나다를까, 길 한복판에 조그마한 개미 한 마리가 죽어 있더래. 개미 죽은 곳에 사람 발자국이 찍혀 있는데, 제 발을 갖다대어 보니 한 치도 어긋남이 없거든. 아까 산길을 걸어오다가 자기도 모르게 땅에 기어다니는 개미를 밟아 버렸나 봐.

'아, 내가 무심코 저 개미를 발로 밟았나 보다.

참으로 미안한 일이로구나'.

개미를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고 나서 이 농사꾼이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앞으로 일이 걱정이야. 농사를 지으러 산길을 다니다 보면 땅에 기어다니는 개미를 언제 또 밟아 죽일지 모르는 일이잖아.

'어허, 이 일을 어쩐다?'

궁리 끝에 이 사람이 좋은 수를 하나 냈어. 무슨 수를 냈는고 하니, 짚신을 아주 성글게 삼아 신고 다니기로 했어. 짚신을 삼을 때 신바닥 총을 촘촘하고 단단하게 엮지 않고 얼기설기 거칠게 엮어서 큰 구멍이 숭숭 뚫리게 만들어 신고 다니는 게지. 그렇게 하면 어쩌다 땅에 기어다니는 벌레를 밟아도 총이 성글어서 죽을 염려는 없겠거든.

본래 짚신이라고 하는 게 총이 촘촘하고 단단할수록 좋은 물건이라 아홉 새 열 새라야 곱다 하고, 다섯 새 여섯 새면 성글어서 못 쓴다 하는데, 이 사람은 석 새 짚신을 삼아서 신고 다녔어. 그러니 말이 짚신이지 신 축에도 못 들어. 이렇게 허술한 것이니 오래 신을 수나 있나. 금방 닳아버리지. 농사지으러 다니다 보면 보통 하루에 두어 켤레씩 신이 닳아.

밤만 되면 등잔불 밑에 앉아서 내일 신을 짚신을 삼는 게 일이지만, 이렇게 부지런히 석 새 짚신을 삼아 신고 다닌 덕분에 그 뒤로는 개미 같은 걸 밟아 죽이는 일은 없었지.

하루는 이 사람이 고개를 넘어오다가 소낙비를 만났어. 비를 그을 곳을 찾아보니 마침 길가에 커다란 바위굴이 있더래. 그래서 거기에 들어갔어. 들어가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데, 아 이런 변고가 있나. 갑자기 '우르르 꽝' 하고 집채만한 바위가 쏟아져내리더니 눈 깜짝할 새에 굴 머리를 딱 막아버리네. 하릴없이 캄캄한 굴속에 딱 갇혔지.

이제 영락없이 굴속에 갇혀 죽게 생겼어. 굴 머리를 막은 바위를 밀고 나가자니 제 힘으로는 어림도 없고, 다른 사람들 도움을 구하자니 호젓한 산중이라 길에 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죽을 도리밖에 더 있나.

이래서 그냥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까 굴 머리를 막은 바위가 슬금슬금 움직이더래. 아주 조금씩 슬금슬금 움직이더니 이게 뒤쪽으로 슬슬 넘어가는 거야. 그러더니 드디어 그 큰 바위가 '쿵'하고 나자빠지면서 굴 머리가 환히 열리네.

죽다가 살아났으니 얼마나 기뻐? 그러나저러나 대체 누가 이 큰 바위를 밀어서 넘어뜨렸나 하고 이리 저리 살펴봤더니, 아 글쎄 바위 아래로 개미떼가 새까맣게 기어 나오더란다.

수많은 개미들이 그새 땅을 파서 바위를 무너뜨린 거야. 저희 목숨을 살리려고 석 새 짚신을 신고 다닌 걸 알고 개미들이 은혜를 갚으려고 그런 거지. 농사꾼은 그 뒤로도 석 새 짚신을 신고 농사를 지으며 오래오래 잘 살았더란다.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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