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담북장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를 좁혀주고 정을 표현하는 데 음식보다 더 좋은 건 없는 것 같다.

서먹하던 사이도 밥 한번 같이 먹으면 편안해지고, 딱딱한 이야기도 식사 자리에선 부드러워진다.

아는 이들을 집에 초대해 늘 먹는 음식도 맛나게 정갈하게 차려내는 이를 보면 부럽다 못해 존경스럽다.

그런 이들 주위엔 늘 사람들이 모여든다.

나라마다 여러 음식이 있지만 따뜻한 정을 나누기에는 우리 나라 음식 만한 게 없고, 이러한 한국 음식의 모든 맛 중 가장 으뜸이 장맛이다.

예로부터 된장은 오덕(五德)이라 하여 다섯 가지 덕을 지니고 있다 하였다.

다른 맛과 섞여도 제 맛을 내는 단심(丹心), 오랫동안 상하지 않는 항심(恒心), 비리고 기름진 냄새를 없애주는 불심(佛心), 매운 맛을 부드럽게 하는 선심(善心), 어떤 음식과도 조화를 잘 이루는 화심(和心)이 그것이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기억은 아득하지만, 밥 위에 올려 금방 쪄낸 호박잎을 걸쭉하게 끓여낸 된장에 찍어 먹을 때 느껴지던, 할머니의 손맛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조금씩 쌀쌀해지기 시작한 이 계절엔 담북장이 생각난다.

청국장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담북장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보글거리는 뚝배기 주위에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저마다 숟가락을 적셔가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정겨운 느낌이 피부로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아랫목에서 띄울 때 콤콤하게 풍기는 그 냄새며, 투박하게 숭숭 썰어 넣은 김치까지, 담북장은 그 이름처럼 정이 담뿍 들어 있는 듯하다.

김치와 담북장의 절묘한 맛의 조화는 담백하고 개운하여 몸뿐 아니라 마음도 편안하게 해준다.

정과 사랑이 넘치는 내 어머니의 음식이다.

'식객'이란 만화에서 작가 허영만은 말한다.

"맛이란 음식에만 깃들여 있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그것을 먹는 사람의 마음속에도 함께 한다.

맛이란 모두의 가슴이다.

맛이란 어머니의 음식이다.

그 어머니가 한 사람이 아니듯 맛 또한 어머니의 숫자만큼 많다". 맛있는 담북장이, 어머니의 정이 그리운 계절이다.

강애리 〈사랑이 가득한 치과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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