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남 문화.문화인-서예가 솔뫼 정현식

거칠게 긋고, 꺾고, 때로는 뿌려버린 듯한 필치, 여기서 느껴지는 강인한 생명력과 그것이 발산하는 친근감. 서예가 솔뫼 정현식(44)씨의 필체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솔뫼는 지난 1994년 서른다섯 나이에 국전 초대작가라는 영예를 얻었다.

2002년에는 국전심사위원을 맡기도 했지만 '이상한 글체를 쓰는 영원한 지역 서예가'를 자처한다.

"붓을 잡은 지 30년이 넘었지만 체계적으로 서예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제 글씨체를 막글이나 잡글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실제 그랬다.

요즘은 민속적 글체라는 의미의 '민체(民體)'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만큼 솔뫼의 필체는 독특하다.

'글꼴은 자유로운 생명력을 가져야 한다'. 그가 생각하는 서예의 지론이다.

이 '자유'와 '생명'을 바탕으로 수천, 수만장의 파지(破紙)를 쏟아낸 끝에 그의 호를 딴 '솔뫼민체'라는 독립된 서체를 완성했다.

이 서체는 올연말 컴퓨터로 쉽게 접할수 있는 상용서체로 만들어져 일반에 공개된다.

계보를 중시하는 서단에서 그는 '독립군'이다.

대학에서 금속학을 전공한 뒤 포스코에서 철판을 만들던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솔뫼의 이력으로 미뤄 그의 서체가 상용화된다는 것은 경이적이다.

수많은 서예가, 문필가, 디자이너들이 있지만 현재 상용화된 워드글씨체는 30여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모양새를 중요시하는 회화나 디자인 전공자들의 작품이다.

서예가 글씨의 상용화는 솔뫼민체가 거의 처음으로 알려졌다.

그의 서체로 새긴 포항시 대보면 호미곶 광장 한쪽의 이육사 청포도 시비는 가장 아름다운 시비중 하나로 꼽힌다.

"생활속의 서예, 그림같은 서예를 하고 싶어요". 솔뫼는 "모두 서울로 가면 지방문화는 누가 만들고 지키겠느냐"며 "앞으로도 지방을 지키며 지필묵과 함께 원융무애(圓融無涯:모든 것이 서로 잘 통해 막힘이 없음)의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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