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잊혀진 문화유산-포항 '장기 모포줄'

비바람에 깎이고 무지로 훼손된 유적, 이어받을 사람 없어 결국 끊어진 우리 문화와 삶…. 외세에 할퀴고 빼앗긴 것도 모자라 우리 문화유산은 곳곳에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있다.

평범한 민족은 역사를 추억하고 뛰어난 민족은 역사와 함께 호흡할 줄 안다고 한다.

문화와 전통을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돌려놓는 작업에 나서야 할 때다.

사라지고 훼손된 문화와 문화유적을 찾아 나선다.

포항시 남구 장기면 모포2리 주민들은 짝수 해마다 8월 보름날 줄다리기를 한다.

수백년 동안 이어진 마을 행사다.

'모포줄다리기'다.

줄다리기에 사용하는 '모포줄'은 지난 1984년 국가중요 민속자료(187호)로 지정됐다.

마을 사람들은 '모포줄'을 '마을수호신'으로 모실 정도다.

마을이장 차정열(62)씨는 "줄다리기를 위해 줄을 꺼낼 때(줄제)와 정월초순(당제) 등 해마다 2차례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했다.

모포줄에 얽힌 설화도 전해온다.

조선 태종4년(1404년) 마을 뒷산인 뇌성산(磊城山)에 용마를 탄 장군이 장기현감의 꿈에 나타나 장군수(將軍水)를 마신 뒤 마을사람들에게 이곳을 밟아야 좋다고 말한 후 사라졌다.

이에 현감은 큰줄을 만들어 격년제로 정월대보름날 양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했다는 것.

그러나 모포2리 사람들은 앞으로 줄다리기를 계속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모포줄이 갈수록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줄다리기를 할 때 안쪽에 로프줄을 끼운다.

모포줄 보호를 위해서다.

모포줄은 줄 머리 둘레가 50cm, 양줄 합쳐 길이가 70여m다.

숫줄과 암줄로 나누는데 마을에서는 할아버지줄, 할머니줄이라 부른다.

줄은 칡덩굴, 피나무 껍질, 볏집을 틀어감아 만들었다.

줄다리기를 할 때는 암줄머리에 숫줄을 끼워 비녀목을 지른다.

모포줄은 중요민속자료인 '본줄'과 함께 '모조줄'이 있다

'본줄'의 정확한 제작연대는 알 지 못한다.

다만 마을 사람들 사이에 200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란 이야기가 전해온다.

본줄은 지난 90년대초 약 5년간 보관장소조차 없어 마을회관에 방치돼 있었다.

줄을 보관하던 건물이 낡아 새 건물을 지어 보관하자 마을의 젊은이들이 잇따라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흉사가 이어졌다.

이 때 마을 어른들은 "할아버지.할머니줄을 함부로 옮긴 탓"이라며 줄을 마을회관에 임시보관했다.

이에 포항시는 1997년 새 보호각을 지었다.

하지만 설계잘못과 부실시공으로 보호각 문과 공간이 좁아 줄을 겨우 넣을 수 있을 정도였다.

관리도 엉망이다.

자물쇠조차 없고 낡은 통풍구로 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임시로 천막을 쳐놓은 상태다.

포항시는 현 보호각 옆에 새 보호각을 짓기위해 현재 기초공사를 하고 있다.

모조줄의 제작연대는 대략 40~50년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모조줄은 마을 인근 도로변인 '현몽각'에 보관돼 있다.

포항시는 2년에 한번씩 시 축제인 '영일만 축제'때 이 모조줄을 꺼내 줄다리기를 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모포줄의 훼손이 심하지만 보수를 하고싶어도 보수할 수 없다는 현실이다.

수백년된 이 모포줄을 보수할 수 있는 설계자(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다.

포항시는 수년전부터 모포줄 보수를 위해 문화재 전문기관 등에 의뢰해 설계자를 찾았다.

그러나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된 줄이 모포줄밖에 없고 이를 설계해 본 경험자를 찾지못하고 있다.

해체 보수를 시도할 수 있지만 문화재청의 허가가 없으면 중요 민속자료를 함부로 손댈 수도 없다.

포항시청 박영균 문화예술담당은 "마을사람들이 보수를 할 수도 있겠지만 문화재법상 임의보수가 불가능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임성남기자 snlim@imaeil.com

사진:중요민속자료인 모포줄 본줄을 보호하고 있는 보호각은 공간이 지나치게 좁고 본줄 관리상태도 엉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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