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릴 수만 있다면 내리고 싶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정국, 쪼들리는 살림, 다락같이 올라가는 집 값, 암울한 교육, 그리고 직장 없이 떠도는 젊은이들. 내릴 수만 있다면 지금 이곳 여기서 정말 내리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믿음과 희망을 주는 곳은 없고 마음 붙일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울분을 달래봐도 마음은 더 휑할 뿐이다.
더욱이 계절마저 가을이다.
마음은 더욱 황량하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를 들먹인다는 사실이 사치스러운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든 마당에 우아한 문화예술이 웬 말이냐며 목을 세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 받고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화이며 내일을 향한 의욕을 심어주고 힘을 길러주는 것이 바로 문화라면 한번 귀 기울여볼 만하지 않은가.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중 다음 대목은 눈길을 끈다.
1947년 해방공간 혼란의 정점에서 쓴 '나의 소원'중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의 한 대목이다.
"우리의 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56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전혀 빛을 잃지 않는 대목이다.
오늘에야 이 대목은 오히려 우리의 가슴에 더욱 절실히 와 닿는다.
지난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대구사람들은 자랑스러웠다.
77개의 공연행사장에는 문화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주최측이 놀랄 만큼 대구사람들은 문화를 즐기기 위해 모여들었다.
20일 동안 대구에는 문화가 넘쳐났고 그 기운으로 대구는 한결 밝아졌다.
한 시인은 이런 현상을 보면서 "문화의 힘을 느낍니다.
지하철 참사로 어둡던 대구시민들의 얼굴이 한없이 밝아진 것을 보면서 문화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희망을 줄 수있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면서 메일을 보내왔다.
21세기는 문화의 힘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문화의 시대라고 흔히들 말한다.
문화는 정서적으로 개인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어떤 시대에도 중요한 가치로 존중받아왔다.
그리고 문화예술의 힘은 상처가 깊을 때 위기에 처했을 때 그 가치는 더욱 빛났다.
세계역사는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기에 오페라와 더불어 할리우드 영화는 전성기를 일구었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현실의 어려움을 잊고 위안을 얻었다.
불멸의 명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가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우주소년 아톰'도 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실의에 빠진 일본인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만들어졌고 일본인들은 이 작품을 통해 위로와 희망을 얻었다.
가까이는 9.11 테러 이후 뉴욕에는 판타지문화가 꽃피웠고 함께 모여 즐기는 문화행사는 더욱 많아졌다
사람들은 이렇게 문화예술을 통해 힘겨운 현실의 어려움을 딛고 내일을 향한 힘과 희망 얻어갔다.
국가경쟁력이라는 것도 한 꺼풀 벗겨 보면 그 안에는 공통적인 게 있다.
바로 문화의 힘이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들에게 예외 없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문화적인 두께와 너비다.
그 문화의 두께와 너비로 현재의 어려움을 이기고 새로운 창조력으로 국가나 도시 발전을 이끌 동력을 만들어냈다.
문화예술을 통해 새로운 희망과 힘을 얻을 수만 있다면, 또 지친 시민들에게 위안과 행복을 주기위해 문화예술인들이 노력한다면, 문화는 제 역할을 다하고 그 힘을 충분히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10월은 문화의 달이다.
이에 맞춰 대구는 문화행사가 홍수를 이루고있다.
전국적으로 1천여 개의 문화행사가 열리고 특히 올해는 서울에서만 열렸던 문화의 날(20일) 행사가 처음으로 지방에 옮겨져 열린다.
그 첫 장소가 바로 대구다.
오늘부터 대구에는 다양한 문화의 날 기념행사가 열리고 산사에서 향교에서 야외공연장에서 실내공연장에서 각종 문화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 문화의 향기에 젖어 오늘의 시름을 잊고 내일의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김순재(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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