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잦은 결항…비행기 못 믿어"

포항공항이 지난해 300억원을 들여 인천국제공항에 이어 초현대식 여객청사를 준공했지만 오히려 항공기 이용은 감소하고 있다.

잦은 결항으로 승객들이 항공기 이용을 꺼리고, 승객이 줄자 공항 입점업체들도 영업에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위기에 처한 포항공항의 실태를 점검했다.

▨잦은 결항으로 개점휴업

국회 건설교통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포항공항의 결항률은 올들어 8월말까지 15.7%로 전국 16개 공항의 평균 결항률 3.5%의 무려 4.4배에 이른다.

지형상 안개가 자주 발생하는 데다 계기착륙시설 등 안전운항 장비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포항공항은 지난 99년 대한항공 여객기의 활주로 이탈사고 후 자동활공각 지시기(GP)를 설치했지만 지형적인 이유로 전파방해가 일어나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부산지방항공청은 전파장애의 원인인 인덕산을 80억원을 들여 30m나 잘라냈지만 여전히 전파장애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계기착륙시설이 없는 데다 자동활공각 지시기마저 쓸 수 없게 돼 조종사들은 육안에 의존해 착륙을 한다.

폭우나 안개 등 기상상태가 조금만 악화돼도 항공기 착륙이 불가능해지고 곧바로 결항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여기다 활주로 이탈사고 후 대한항공은 인덕산과 반대 방향인 조항산쪽에서 착륙할 경우 시정거리제한을 건교부 기준치인 4천m의 2배인 8천m를 적용하고 있다.

사고예방을 위해 안전기준을 강화한 것이지만, 시정거리가 조금만 나빠도 항공기 착륙이 금지돼 결국 결항률을 높이는 원인이 되고 있다.

장마철이던 지난 7월의 경우 결항률이 무려 26.1%로 이틀 걸러 내린 비 때문에 결항일수가 무려 16일에 이르렀고, 결항이 한 차례도 없었던 날은 겨우 7일에 불과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포항공항은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건교부 포항공항 출장소에 따르면 지난 95년 한때 2.2%를 기록했던 포항공항의 결항률은 96년 4.6%, 97년 5.4%, 98년 7.2%, 99년 7.4%, 2000년 9.2%로 계속 높아졌고, 급기야 작년에는 13.1%까지 치솟았으며 올들어 8월말까지 15.7%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지역경제에도 악영향

결항이 잦다보니 항공 여객수도 줄고 있다.

지난 97년 112만명에서 재작년 75만명, 작년 70만명으로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올들어 7월말까지 탑승객은 32만여명에 불과하다.

결항 때문에 비행기를 믿지 못하는 공항 이용객들은 항공편 예약과 함께 대구공항과 울산공항 또는 철도편까지 미리 예약하는 등 이중삼중의 안전장치(?)까지 해두는 실정이다.

포항공단업체 삼정피앤아이 장춘식(40) 총무팀장은 "포항공항의 잦은 결항 때문에 항상 대구나 울산공항편을 함께 예약한다"며 "기업활동에도 적잖은 장애가 된다"고 말했다.

포항의 경우 공단과 인근 관광지인 경주를 끼고 있어 비즈니스맨과 관광객의 항공 수요가 높은 편이지만 툭하면 결항되는 탓에 이들의 발길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대한항공 박찬교 공항지점장은 "탑승객 감소로 항공사 영업에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영업손실이 커지자 아시아나항공은 이미 시내지점과 공항지점을 통합했고, 대한항공도 연말쯤 시내와 공항지점을 합치기로 하는 등 자구책을 찾고 있다.

결항 피해가 가장 큰 곳은 공항 입점업체들. 공항그릴과 서점, 커피숍, 기념품 판매장 등이 영업 중이지만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공항공사 포항지사와 보증금 5천만원에 1년 계약을 맺고 있는 공항그릴은 50여석의 좌석에 파리를 날리고 있으며 종업원도 9명에서 4명으로 줄였다.

엄정환(29) 지배인은 "하루 이용객이 250~300명은 돼야 적정이익이 발생하는데 요즘은 100여명에 불과하다"며 "계약이 만료되면 영업을 포기할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공항서점 신현길(63)씨도 "하루에 책을 구입하는 사람이 고작 5명 정도에 불과해 직원들을 모두 내보내고 혼자 점포를 본다"고 했다.

2004년 경부고속철이 개통될 경우 지금도 허덕대는 항공수요의 감소가 불가피해져 막대한 예산을 들인 포항공항이 자칫 애물단지로 전락할 우려가 높다는 지적도 있다.

▨향후 대책

건교부 항공안전본부는 포항공항의 결항률을 낮추기 위해 미연방항공청 자문을 받아 신계기착륙시설(TLS)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착륙유도레이더(PAR)도 설치할 계획이다.

착륙유도레이더는 착륙지점에서 15km 이내의 진입로 부근에 있는 항공기에 대해 거리, 방위, 각도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시설. 신계기착륙시설은 활주로 중심선과 활공각도, 위치정보 등을 제공하는 시설이다.

이같은 장비가 보강되면 15%대의 높은 결항률이 해소될 것으로 항공안전본부는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신계기착륙시설이 50억원에 이르는 고가인 데다 내년 정부 예산에 반영된다해도 장비발주와 설치에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정작 설치되는 것은 2005년쯤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또 신계기착륙시설 등이 미국에서 최근에 개발된 장비들인 데다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공항도 몇 곳 안되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작동할지 미지수다.

결국 조종사의 시계비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착륙시설들이 빠른 시일내에 설치돼야 안개와 비바람 등 기상 악화에도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해져 결항률을 낮출 수 있고, 포항공항도 '믿지 못할 공항'이란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포항.이상원기자 seagul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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