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具常 시인 '유언장'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오늘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투병 중인 원로시인 구상(具常.84)씨가 격월간 '한국문인' 최신호(10.11월호)에 공개한 유언장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자'와 함께 실린 시 '오늘' 전문이다.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병마와 싸우면서도 장애인 문학의 발전을 위해 최근 문학지 '솟대문학'에 2억원을 쾌척한 데 이은 이 신작시와 유언장은 또 다른 감동을 자아낸다.

오늘을 살고 있는 건 곧 영원 속의 한 과정임을 일깨우는 이 메시지는 평생 구도자의 자세로 일관, 모든 생명의 구원을 노래해온 시인의 맑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리가 아니고 무엇이랴.

▲유언은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영향력'이며, 은밀한 '자기고백적 행위'다.

타인에 대한 바람일 수 있고, 고마움과 미안함의 표현일 수도 있다.

대상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세상에 대한 소회나 각성을 나타낸 경우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삶을 더 보람 있게 만들 뿐 아니라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발견하는 마지막 깨달음에 다름 아니리라.

▲지난 1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인터넷 유언장 은행이 개설돼 화제를 낳은 바 있다.

반년만에 1천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했고, 방문자는 6만명을 훨씬 넘어섰다는 보도도 있었다.

유언장이란 죽음을 연상시켜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는 보다 건강하고 보람 있는 삶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기 때문일 게다.

더구나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을 떨쳐 버리기에도 효과가 클 수 있을 게다.

▲구상 시인이 보여준 병상에서의 유언장과 신작시는 오늘의 혼탁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야말로 금과옥조와 같은 금언이요, 빛나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내세관을 부정하면서 과거.현재.미래는 하나이고, 영원의 한 과정인 현재를 마음 비우며 살아야 한다는 일깨움은 노시인의 오랜 명상과 기도의 소산임에 틀림없으리라. 하지만 '마음이 가난한 삶'과 '마음을 비운 삶'은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노시인의 유언을 깊이 새기면서 우리도 유언장을 쓰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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