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문화인과 훈장

3년전에 돌아가신 소설가 황순원 선생은 원래부터 세속의 명리를 초월한 처신으로 이름난 분이신데, 말년에는 정부에서 수여하는 은관문화훈장을 거부하면서 또 한번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선생의 명분은 간단하고도 명확했다.

소설가에게는 작품에 대한 독자의 평가 이외에 그 어떤 명예나 수사도 불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대학에 출강해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 외에는 그 어떤 사회활동도 하지 않으셨고, 그 대학에서도 명예박사학위는 물론 총장이니 학장이니 하는 자리마저 사양했던 선생의 면모를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일부 냉소적인 사람들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은관이라서 거부한 게 아니냐, 금관문화훈장이었다면 받았을지도 모른다… 선생 사후에 정부에서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고, 유족들은 논의 끝에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본인은 거부할 수 있었지만 유족의 입장에서는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돌아가신 선생께서 이 사실을 알 수 있었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생전의 선생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남긴 적이 있다.

'문화훈장을 주겠다는 정부측의 일처리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문화훈장을 수여하면 받겠느냐는 의사 타진부터 해야 도리가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일방적으로 결정되었다는 통고만이 있었다.

고맙게 받으라는 투였다' 대단한 자존심이 아닌가? 백보 양보해서 금관이 아니라서 거부했다는 설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 자존심이 돋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이쯤은 되어야 한 예술가로서 거목이니 장인이니 하는 찬사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에서 문화예술인들에게 포상을 하는 행위를 전적으로 백안시할 수 없는 것도 분명하다.

단 그렇게 포상을 시행하는 주체가 정부가 아닌 전체 국민임을 알아야 하고, 그 선정의 기준이 예술적인 성취만을 대상으로 해야 하며, 주고 받는 과정에서 주는 쪽과 받는 쪽의 권위와 명예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어야만 한다.

올해도 이른바 문화의 달이라는 10월을 맞아 많은 문화예술인들에게 문화훈장이 주어졌다.

그 면면을 보면서 푸른 눈, 하얀 눈을 번갈아 뜰 수밖에 없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이 지면에서는 크게 두가지만을 지적해두고 싶다.

우선 원로 만화가인 길창덕 화백에게 보관문화훈장이 주어졌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만화는 이미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온지 오래다.

비단 신세대들만이 아니라 우리 또래들도 만화에 중독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던가. '꺼벙이', '꺼실이', '순악질여사' 등 많은 캐릭터를 통해 우리들의 팍팍한 삶에 웃음을 던져주었던 길창덕 화백에게 문화훈장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비로소 탈권위주의 시대에 들어섰음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아스테릭스'를 그린 프랑스의 르네 고시니와 알베르 우데르조, '땡땡의 모험'의 작가인 벨기에의 에르제가 유럽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를 떠올려보면 만시지탄의 감회마저 있다.

, 앞으로도 만화계의 거장들에게 더 많은 영광이 주어지기를 빈다.

다음으로는 아쉬운 점인데, 신문에 난 기사를 보면 아직도 정부측의 관료적인 일처리가 눈에 거슬린다.

훈장을 받는 사람들의 이력을 보자. 가령 시인이면서 대학교수인 경우, 반드시 대학교수를 앞 세우고 시인이라는 호칭을 뒤에 붙이곤 한다.

공직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무슨무슨 직위를 내세운 다음에야 그 사람이 종사해온 장르를 밝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본말이 전도된 일처리가 아닐 수 없다.

당사자가 대학교수이기에, 혹은 중요한 공직이 있기에 문화훈장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시인이기에, 평론가이기에, 화가이기에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명예를 가져다준 장르를 앞세우는 것이 바른 일이라고 생각된다.

하찮은 일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런 작은 잘못에서부터 황순원 선생이 그토록 고개를 내젓던 관료적인 사고방식의 눅눅한 냄새를 맏곤 한다.

문화예술에 관한 포상은 지극히 사소한 부분에서까지 문화예술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정부측에서 보자면 일과성의 한 행사일 수 있지만, 문화에술에 관심을 가진 장삼이사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여러가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혹은 박수를 보내거나 혹은 코웃음을 치거나 하는 것이다.

문화예술인과 훈장… 참 간단치 않은 명제다.

고원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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