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울타리
"토끼 울타리만 찾으면 우린 집에 가는 거야", "그럼 엄마도 만날 수 있겠네".
필립 노이스 감독의 '토끼 울타리'는 엄마 없는 하늘 아래에서 엄마 찾아 6천리를 가는 세 자매의 이야기다.
황량한 호주 벌판과 사막을 가로질러 오직 엄마를 보기 위해 온갖 고초를 견뎌내는 혼혈 자매의 사연이 가슴 찡하게 만든다.
'토끼 울타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토끼 보호 울타리를 따라서'가 원작. 지은이 도리스 필킹턴의 어머니 몰리가 14세 때 겪은 실화다.
호주 서부에 위치한 지가롱 마을. 원주민 몰리(에블린 샘피)의 가족 앞에 한 대의 지프가 나타난다.
차에서 내린 네빌(케네스 브래너)은 14세 몰리와 10세의 데이지, 8세의 그레이시를 빼앗아 차에 태운다.
이들은 2천400km(6천리) 떨어진 백인이 운영하는 교육 기관에 수용된다.
엄마가 그리운 몰리는 비오는 날 밤 동생들을 데리고 탈출한다.
몰리의 탈출 사실을 알게 된 백인들은 곧바로 추적대를 조직해 뒤를 쫓는다.
아이들은 매일 100리를 걷고 또 걷는다.
작은 동물을 잡아먹고 때로는 구걸하며 토끼 울타리를 따라 조금씩 '전진'한다.
장장 9주에 걸친 여정이다.
'토끼 울타리'는 줄거리만으로도 충분히 눈물을 펑펑 흘리게 하는 소재다.
그러나 호주 출신 필립 노이스 감독의 시선은 차분하다.
왕가위 감독과 함께 작업하며 카메라의 현란한 '춤사위'를 선 보였던 촬영 감독 크리스토퍼 도일도 최대한 자제한다.
대신에 대지의 장엄한 모습과 그 속에 작은 점처럼 움직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롱숏으로 잡아낸다.
특히 마지막 재회 장면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수천㎞ 떨어진 엄마와 아이들이 토끼 울타리를 잡고 그리워하는 모습은 영화가 끝나고도 가슴을 아리게 한다.
가공된 코미디와 억지 드라마가 판을 치는 극장가에 '토끼 울타리'는 주목은 받지 못하지만, 여운은 긴 드라마다.
엄마를 만났지만, 70년대까지 숨어 지내야 했다는 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더하다.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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