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떠나라, 가을빛 스크린 속으로

가을은 사랑의 계절이다.

낙엽 진 돌담길을 홀로 걸을 때 옆구리가 시리도록 허전함이 지독한 계절이기도 하다.

추운 겨울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 많은 남녀들은 제 짝 찾기에 분주하다.

단풍의 붉은 빛깔만큼이나 정열적인 사랑을 하고 싶고, 억새처럼 질긴 사랑도 나누고 싶다.

깊어가는 가을,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하고 싶지 않습니까?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고?

그렇다면 가을냄새가 듬뿍 담긴 영화 속으로 떠나십시오. 리모컨으로 당신의 거실을 단풍과 은행잎으로 가득 깔아본다면. "사랑에 목마른 당신, 떠나라. 가을빛으로 아름답게 물든 스크린 속으로…".

#슬픈 사랑-'파 프롬 헤븐'(Far from Heaven)

울긋불긋한 단풍이 겉보기가 화려하다고 해서 속내까지 그런 것일까. 속으로만 삼킨 슬픔이 제 몸을 새빨갛게 태운 것은 아닐까.

물감으로 물들인 듯 선명한 가을단풍 아래로, 파스텔톤의 목조건물이 평화롭기만 한 가정. 하지만 아내는 남편의 충격적인 외도 현장을 발견하고 실의에 빠진다.

남편의 비밀을 알고도 엄마와 아내의 위치를 지키려는 그녀. 지독한 슬픔에 그녀의 가슴은 거리의 단풍색깔 만큼이나 새빨갛게 타들어간다.

이 계절은 그녀에게 지독한 아픔의 계절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거리의 가을 풍경은 너무나 환하고 선명하다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눈물을 삼켜야 하는 가을.

최근 연인과 헤어져 올가을이 더욱 외로운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 속 가을로 빠져보자.

#마지막 사랑-'뉴욕의 가을'

마치 누군가 노란 물감을 뿌린 듯 선명한 은행잎이 인상적인 유명한 가을 배경. 거리에 흩뿌려진 황금비단을 밟으며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인의 모습은 한폭의 수채화다.

하루가 멀다하고 파트너를 갈아치우는 중년의 플레이보이가 시한부 삶을 사는 20대 초반의 순수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져든다.

지금까지 알던 여성과는 달리 진실한 영혼을 간직한 그녀는 앞으로 살 날이 불과 1년도 남지 않았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여인은 마치 겨울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가을이 되자 분주해진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듯 인생도 저물어간다.

마지막 진한 사랑을 하면서….

#애틋한 사랑-'쓰리 시즌'

금방 불이라도 붙을 것처럼 붉게 타오른 단풍나무 거리에 홀로 서있는 여자. 그녀는 도대체 무엇을 주시하고 있을까. 또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 것일까.

매일의 문화가 달라지고 하루마다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는 격변의 도시 사이공.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얻을 것보다 포기할 것이 많았다.

이 도시 속 세쌍의 사람들은 각각 다른 모습의 세가지 만남, 세가지 사랑, 세가지 희망을 불태운다.

가을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가슴 쓰리도록 아픈 계절이다.

사랑한다 말하면 달아날까 두려워 고백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픈 영화. 희망의 봄, 열정의 여름을 지나 가을은 진한 그리움이다.

그 그리움을 더 깊게 해줄 영화다.

#분노한 사랑-'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만물이 피어나는 봄이 유아기이고, 녹음이 짙푸른 여름이 소년기라면, 울긋불긋한 가을은 격정적 청년기이다.

살의를 품고 고통에 빠진 남자, 결국 배신한 아내를 죽이고 살인범이 된다.

그의 사랑에 대한 분노는 가을 산만큼이나 다양한 색깔로 뒤엉켜 있다.

아름다운 풍경으로 미화되지만 속으로는 모진 풍파를 겪어야 한는 격동기. 한가지 색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가을은 마치 인간의 평탄치 않은 삶과 같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봄의 생동감, 대책없이 작열하는 여름의 정열, 모든 게 무르익어가는 가을의 결실,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겨울의 풍경. 매번 충격적인 내용으로 주목받아온 김기덕 감독의 영상 미학까지 관람할 수 있는 것은 또하나의 덤이다.

#낭만적 사랑-'취화선'

가을을 대표하는 풍경에 낙엽만 있는 것은 아니다.

드넓은 벌판에 피어있는 갈대밭도 빠뜨릴 수 없는 가을의 주인공.

충북 제천 갈대 숲에서 벌어진 두 남녀의 정사신은 전혀 추하게 보이지 않는다.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낭만적 분위기의 늦가을 풍경이기 때문이다.

장승업의 예술 세계를 이해했던 유일한 여인. 세상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그의 사랑이자 스승이었다.

은빛으로 물든 갈대는 두 연인의 진득한 사랑을 낭만적 사랑으로 만들어준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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