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11월3일 삼성상용차 퇴출 결정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협력업체들이 꾸렸던 대책위원회는 그 후 만 3년이 가까워온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상용차 퇴출과 함께 문을 닫은 대구 성서공단내 한 협력업체 경비실이 '삼성상용차 협력업체 생존비상대책위원회(삼생회)'의 사무실.
기자를 맞은 60대 초반의 남자는 삼생회 사무국장 명함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는 신문엔 이름을 내지 말아달라며 뜬금없는 부탁을 했다.
"문을 닫은 이 회사 대표가 다른 곳에서 가까스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 회사 상호와 사주 얘기가 나가면 또 그 분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삼성상용차 협력업체 출신'이라고 하면 금융기관 여신까지 거둬갈지 모릅니다.
투쟁한다는 사람이 이런 얘기하면 이상하지만 이 회사에 몸담았던 제 이름을 이젠 더 이상 밝힐 수 없습니다"
공무원 퇴직 후 알고 지내던 이 회사에 들어와 업무를 보다 상용차 퇴출로 '투사'가 되었다는 그는 피해보상이 이뤄질때까지 "끝을 볼 각오"라고 했다.
사무국장이 커피를 타는 사이 잠깐 둘러본 '경비실만 문을 연 회사'의 전경은 참혹했다.
2천평이 넘는 드넓은 공장은 곳곳에 자물쇠가 걸려 있고 생산 기구가 마당 곳곳에 쌓여 있었다.
"마당에 놓인 저것이 '파렛트'란 건데 부품 이동 수단이예요. 저거 한 개 수십만원 주고 샀는데 이젠 돈주고 고철로 처분해야할 판이예요. 공장안에 설비도 그대로예요. 공장 부지를 팔려고 해도 설비 뜯어내는 비용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직원이었던 제가 이렇게 애타는데 이 회사 사용자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삼생회에 따르면 삼성상용차 협력업체 179개의 피해액은 모두 1천388억여원. 진성어음 127억원, 납품후 미결제 물품비 63억원, 완성품 재고 188억원, 개발 및 설비투자비 1천10억원 등이 삼생회가 집계한 피해 목록이다.
대구.경북지역 피해업체는 58개로 피해액 합계는 600억원.
"얼마전에 상용차 부지가 팔렸는데 그 돈을 갖고 저희들의 피해를 일부 보상받을 수 있을지 기대를 걸어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힘들것 같아요. 채권우선순위를 가진 산업은행의 채권액이 1천134억원인데 939억원에 낙찰이 됐으니 저희한테 돌아올 돈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사무국장은 돈 얘기가 나오자 삼성에 대한 감정이 폭발했다.
상용차를 세울때부터 투자의지가 없었으면서도 많은 협력업체를 속여 투자를 유도했는가하면 설립 5년내 1조5천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는 것.
"자동차 회사는 10년을 굴려봐야 장사가 될지 안될지 여부를 안다는데 삼성은 고작 2년여동안 문을 열었다가 사업을 중단해버렸습니다.
저는 프로야구를 좋아했는데 이 일을 당한 이후론 야구 구경 가는 사람을 보면 말립니다.
고약한 기업은 마땅히 비판을 받아야하는데 대구시민들은 불과 몇년만에 다 잊은듯합니다"
사무국장의 열변이 이어지는 가운데 SM5승용차 1대가 삼생회 사무실 앞으로 들어왔다.
생산품 전량을 삼성상용차에만 팔다 상용차 퇴출로 졸지에 '폭격'을 맞은 한 50대 협력업체 대표였다.
"삼성상용차 때문에 수십억원 들여 공장을 세웠는데 완전히 뒤통수 맞았죠. 제 승용차도 그 때 산 겁니다.
멀쩡한 차 팔고 삼성차 떠맡던 시절이었죠. 정나미 떨어지지만 형편이 안되니 바꿀 수도 없어요"
이름 밝히길 거부한 그는 정부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완성차 업체의 퇴출은 수많은 협력업체를 죽이는 일임은 물론, 그 차를 산 소비자들에게도 부품공급 중단에 따른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데도 정부가 퇴출을 시켜버렸다는 것.
상용차 퇴출 이후 종업원 절반 이상을 감원하고 가까스로 공장을 꾸려가고 있다는 그는 삼생회 사무실에 가끔 나오지만 손해를 보상받을 생각은 접었다고 털어놨다.
삼생회는 지난 7월 이후 정기적으로 해오던 서울 삼성 구조조정본부 앞 집회도 잠정 중단했다.
삼생회 안에서도 '이젠 잊자'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
"우리 사정을 알리는 현수막도 수만개나 만들었는데 이젠 10여개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피해보상 차원이 아닌 부도덕한 기업으로부터 중소기업을 지키고, 지역 경제를 보호하는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삼생회 사무국장은 혼자 남더라도 하겠다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