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생각 해보기-인류는 기계부품으로 전락하는가

▨현실과 가상, 어느 것이 진짜일까.

'Welcome to the Real world'.

모피어스가 현실을 깨달은 네오에게 던지는 말이다.

가상현실 속에서 벗어나 이제 진짜 현실 속으로 들어왔다는 뜻이다.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는 나는 누구인가'. 수세기에 걸쳐 철학자들이 고민한 인간 존재의 의문이다.

'내가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내가 돼 꿈을 꾼 것이지'라는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도 여기서 출발한다.

꿈이 현실인가 현실이 꿈인가. 물(物)과 아(我)의 구별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 '매트릭스'의 설정이다

1965년 이반 서더랜드는 그의 저서 'The Ultimate Display'에서 이렇게 말했다.

"컴퓨터라는 장치로 물리적인 세계에서 표현할 수 없는 개념들을 습득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앨리스가 걷던 이상한 나라를 그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가상현실은 디지털세계를 지배하는 개념이다.

'웹하드', '블로그' 등 인터넷 공간은 이제까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만 실재한다는 믿음에 의문을 던져주었다.

'우리 홈이예요~'라는 홈페이지도 기껏해야 테크노빌딩의 한 켠에 자리잡은 서버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은 그렇지 않다.

0과 1로만 이뤄진 그 공간에서도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오감을 만족시키고 있다.

더구나 가상이 현실을 구축(驅逐)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에 있어서 모든 것은 실재를 모사하는 기호들로 대체되며, 이러한 기호나 이미지들의 모사물이 실재보다 더욱 실재적(Hyper-Real)인 것이 된다고 봤다.

대체된 모사물이 바로 '시뮬라크르'다.

매트릭스 안에서 인간은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집단적 환영 상태에서 헤맨다.

이런 현상은 미래의 세계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아바타 등 가상의 존재와 온라인 인간관계에 중독돼 있다.

현실보다 가상 공간의 일들을 더욱 믿는 '시뮬라크르 세상'이 된 것이다.

'매트릭스'는 현재 우리가 믿고, 살고 있는 이 세계마저 가상현실일 수 있다는 의문을 던지면서 디지털화하는 인간의 의식 흐름을 패러독스하고 있다.

▨과연 미래는 암울한 매트릭스의 세상일까.

'매트릭스'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관을 제시하고 있다.

디스토피아(Dystopia)는 이상적인 미래 '유토피아'의 반대말.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들이 극단화돼 초래할 지도 모를 암울한 미래사회다.

인간이 만든 테크롤로지에 의해 인간이 기계의 '가축'이 될 수 있다는 '매트릭스'의 제시는 어떤 미래관보다 어둡고 음울하다.

참으로 섬뜩한 것은 인간의 의식도 조작되고, 주입돼 현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계와 인간에 대한 '매트릭스'의 해석은 그동안 보여진 소설이나 영화의 디스토피아적인 미래관을 뛰어넘는다.

이제까지 테크놀로지에 대한 반성은 기계의 인간지배, 그에 따른 갈등과 대립을 통해 표현됐다.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인공지능 컴퓨터 할(HAL)처럼 말이다.

그러나 '매트릭스'에서는 기계와 인간의 '공존 불가피성'을 던지면서 이 모티브를 더욱 확장시키고 있다.

'매트릭스2-리로디드'에선 시온의 평의회 원로가 네오에게 "기술에 대한 통제가 뭐냐"고 묻는다.

이는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테크놀로지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따라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철학자 자끄 엘륄의 '비관적 기술관'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그러나 '매트릭스'의 암울한 미래관도 결국은 현실에서 출발하고 있다.

텍사스대 마틴 A.터너웨이교수는 매트릭스의 '인간 발전소' 장면은 현 자본주의의 투시라고 해석했다.

에너지원인 벌거벗은 인간들은 노동력을 판매하는 노동자 계급이며 스미스 요원은 자본의 수호자라는 것이다.

디스토피아냐 유토피아냐는 결국 현실에서 출발하는 미래 키워드인 셈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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