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용우기자의 성주 참외농사 체험

농한기. 농촌은 지금쯤 서서히 가을걷이를 끝내고 일년동안의 힘든 노동도 잊을 시간이다.

부지런한 사람이라도 내년 농사를 설계하고 준비할 정도. 하지만 휴식도 없이 내년농사를 시작하는 억척 농업인들이 있다.

이들에겐 쉴 틈도 없다.

성주 비닐하우스 참외재배 농업인들에겐 지금이 일년중 제일 바쁜 시기다.

올가을 들어 가장 쌀쌀한 기온을 보인 23일. 성주군 월항면 보암리 박진순(46)씨 참외 재배 비닐하우스를 찾았다.

박씨는 참외 비닐하우스 17동(동당 200평)을 경작하고 있으며 경북도 농업명장에 추천될 정도로 17년간 참외를 재배해온 '참외박사'다.

"농사일을 체험하러 왔는데 많이 부려 먹으세요". 부지깽이도 덤벙거릴 만큼 바쁜 철인데 행여 짐이나 되지않을까 걱정이다.

"일 좀 해봤어요? 별로 할 일이 없을건데" 인사를 건네면서도 박씨는 미덥지않은 눈치다.

일단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박씨는 비닐하우스에 두엄(퇴비)을 내고 있는 중이다

"트랙터는 운전할 줄 알아요?"라고 묻는다.

기죽지 않으려고 "차 운전경력 20년에 무사고"라고 둘러대자 그럼 일단 퇴비 살포기에 두엄을 옮겨 싣는 작업을 도우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무작정 트랙터에 올라 작동방법을 듣고 시운전을 해봤다.

제대로 될리 만무하다.

기어를 넣는 것조차 엄청 힘들고 그 육중한 몸체가 마음먹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일꾼이 이렇게 시원치않아서 어디 써먹겠나" 옆에서 지켜보던 박씨가 안쓰러웠던지 운전대를 뺏다시피한다.

농사를 도우러 왔는데 별로 할일이 없다

하긴 삽으로 이랑을 만들고 수레로 퇴비를 옮기던 시대가 아니다.

이젠 기계가 없으면 농사일을 못한다.

기계를 다룰 줄 모르니 오히려 거치적거리기만 할 뿐이다.

박씨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트랙터를 몰아 비닐하우스에 퇴비를 넣는다.

일사천리다.

말동무나 될 요량으로 퇴비 살포기를 모는 트랙터에 함께 올라탔다.

퇴비를 많이 내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이게 1년 농사의 절반"이란다.

퇴비가 그냥 거름이 아니라 돈덩이란다.

제지공장에서 참나무.낙엽송의 잔가지와 껍질 등을 1년동안 묵혀 숯을 만들고 여기다 참외덩쿨.계분.쌀겨.액비 등을 섞는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친환경농법이다.

이런 퇴비를 사용하면 뿌리가 튼튼해 품질이 좋은 참외를 생산할 수 있다.

금비(화학비료)를 사용하는 농가보다 영농비가 적게 들고 참외시세도 월등히 좋다는 말도 덧붙인다.

하긴 성주참외가 달리 성주참외인가.

제대로 참외농사를 짓는 농가는 지금이 제일 바쁜철이다.

한해 농사의 성패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흙을 고르고 로타리를 치고 비닐을 씌우고 하는 정지작업에 보통 한달 보름이 걸린다.

이어 씨앗을 뿌린 뒤 옮겨심고 수정, 순치기 등을 거쳐 내년 3월쯤이면 첫 참외가 출하된다.

"올해 얼마나 벌었어요?"하는 물음에 "이것저것 합쳐 한 1억5천만원 정도…"라고 답한다.

대수롭지 않은듯이 말하는 박씨를 놀라서 쳐다보자 "참외로 1억하는 사람 많아요"라고 말한다.

억대 연봉이란 말에 박씨가 새삼스러워 보인다.

억대의 농사를 지으면서도 일손은 박씨부부가 전부란다.

한창 바쁠 때는 모친이 도와주고 가끔 일손을 사서 쓰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어쨌든 박씨는 1년내내 비닐하우스에 붙어 산다.

이곳이 삶이자 생활의 터전인 셈이다.

퇴비장과 비닐하우스 사이를 몇차례 왔다 갔다 했을까. 어설픈 일꾼이 보기 안쓰러웠던지 박씨는 오늘 바람이 많이 불어 두엄넣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며 목이나 축이자고 제안한다.

하는 일 없이 괜히 따라다니는 것도 힘이 들던 차에 "그러지요" 라고 얼른 답했다.

비닐하우스 옆에 있는 농자재 창고에 들어서자 박씨부인이 "갑자기 오셔서 막걸리도 없고 차나 한잔 하세요"라며 커피를 내왔다.

일한 뒤 마시는 커피 역시 막걸리 맛만큼 일품이다.

내친 김에 티켓다방에 대해 물었다.

"여기서도 가끔 커피시켜 먹어요"라고 묻자 박씨는 방송이 잘못된 거라며 정색을 한다.

일손이 바쁠 때면 비닐하우스에서 점심이나 참, 커피를 시켜먹기는 하지만 방송에 나간 것처럼 그렇지는 않다는 것. 대부분 농민들이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데 마치 먹고 노는 것처럼 방송에 보도됐다며 목청을 높인다.

커피를 내온 부인에게 "아주머니 돈 벌어서 뭘하세요"라고 묻자 "모이는 게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함께 온 성주농업기술센터 안성호씨가 '알부자'라고 귀띔한다.

잠시 휴식 후 삽을 들고 창고 한켠에서 배양중인 미생물섞기 작업을 도왔다.

미생물이 잘 자랄수 있도록 뒤적여 공기를 통하게 해주는 일이다.

어릴때 고향인 이곳에서 농사를 거들기도 했지만 삽질을 해보기도 정말 오랜만이다.

몇삽을 뜨지도 않았는데 허리가 아프고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다.

박씨가 웃으며 "허리살을 빼는 데는 삽질이 최고지요"라며 농을 건다.

참외농사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날씨가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오늘 품을 팔았는데 얼마나 줘야 하나" 한다.

한일도 없었는데 부끄러운 마음에 "나중에 참외가 나오면 맛이나 보여줘요"하고 돌아섰다.

UR, WTO, FTA 등 최근 우리 농정에 달갑지 않은 얘기만 들려온다.

그러나 가을 들녘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참 열심히 사는 농업인들이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동안 성주참외가 유명하다는 것과 참외농사로 돈벌이가 쏠쏠하다는 정도의 단편적인 지식만을 갖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비로소 참외재배 농민들의 참모습을 본 것이다.

최소한 일한 만큼 보상을 받는 그런 농촌이 되길 바랐다.

성주.박용우기자 yw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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