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이신학 대구 남구청장은 집무실에서 아주 낯익은 손님들을 맞았다.
이날 남구청을 찾은 사람들은 이 구청장이 매일 아침 운동을 가는 제2 대명공원에서 날마다 얼굴을 마주치는 아줌마와 아저씨들. '배수지체조클럽' 회원들이었다.
회원들은 이날 이 구청장에게 상장 2개를 내밀었다.
사흘 전(11일)에 울산에서 열린 제5회 문화관광부 장관기 체조경연대회에서 받은 에어로빅 노년부 우승 상장과 응원상 1위 상장이었다.
전국 규모 체조경연대회에서 당당히 우승함으로써 나이 지긋한 대구 아줌마들의 건강미를 전국에 알린 배수지체조클럽(회장 이경자.60) 회원들. 60명에 가까운 회원 대부분이 앞으로 살 날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짧을 50, 60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대명5동 배수지(현재는 제2 대명공원이라 불림)를 모태로 태어난 모임. 대명5동 배수지가 일반인에게 개방된 것은 지난 95년 1월. 주택가에 인접한 데다 수목이 잘 가꿔져 있고 산책로와 운동시설도 구비된 수목원은 자연스레 인근 주민들의 휴식처이자 운동장소가 됐다.
아침마다 이곳을 찾아 건강을 생각하며 자기 나름대로 뛰거나 걷던 아줌마들이 체조클럽을 결성한 것은 95년 4월.
클럽 창립멤버인 정선이(69.여)씨는 "매일 아침 얼굴을 대하면서도 서로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이 어색했고 좀 더 체계적인 운동을 하고 싶다는 공감대도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방법을 몰라 진척이 없던 중 이신학 현 대구 남구청장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 이 구청장은 당시 아무 '벼슬'은 없었지만 동네 일에는 제법 적극적으로 나서던 사람. 체조클럽 회원들처럼 매일 아침 배수지로 운동을 나가던 이씨는 아줌마들에게 운동을 지도할 강사를 소개해주면서 강사료를 지급하는데도 얼마 동안은 힘을 보탰다고 한다.
배수지체조클럽 회원들이 이번에 남구청을 방문한 이유도 오늘의 배수지체조클럽이 있게 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배수지체조클럽 회원은 처음에는 20여명에 불과했고 전부 아줌마들뿐이었다.
그러나 지나면서 조금씩 불어나 현재 회원은 60명 가까이 되고 아저씨 회원도 2명이나 된다.
공식 모임은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열린다.
오전 6시부터 7시까지 1시간 동안. 회비는 월 5천원. 회비는 강사료를 지급하는데 사용된다.
아침마다 새천년체조에 에어로빅을 옷이 땀에 푹 젖을 정도로 하다보니 회원들의 건강은 나이를 무색케할 정도로 좋아졌다고 한다.
영남대병원 자원봉사자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경자(66.여)씨는 오십견과 다리 저림 증상이 말끔히 사라졌고, 운동하기 전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던 류귀화(65.여)씨는 자리에 들자마자 잠이 든단다.
80㎏의 몸을 이끌고 봉덕동에서 20분 이상 걸어서 '출퇴근'한다는 정선이씨는 "걷는 데는 누구보다 자신 있다"며 기자에게 빨리 걷기 내기를 제안하기도 했다.
2명뿐인 남자 회원 중의 한 사람으로, 5년 전 최인수(64)씨와 함께 이 클럽에 가입한 김국호(59)씨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지팡이를 짚고 다녔는데 운동을 하고 난 뒤부터 지팡이 없이 다닌다.
건강과 더불어 몸매도 좋아졌다고 한다.
클럽 회장 이경자(60.여)씨는 "옷 수선을 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앉아 일하는데도 아랫배가 거의 없다"며 "회원들 대부분이 나이에 비해 뱃살이 적다"고 자랑했다.
8년이란 세월을 매일 아침 함께 부대끼다 보니 회원들간의 정 또한 피를 나눈 형제.자매들 이상 두텁다.
자식들이 전부 서울에 산다는 이인순(69.여)씨는 "아들 집에 가도 사흘을 못버틴다"며 일요일에도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루라도 얼굴을 안보면 몸살이 날 정도로 사이좋게 지내는 이들이지만 참가인원이 제한돼 있는 체조경연대회를 앞두면 조금 사정이 달라진다.
그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실력을 대외적으로 서로 과시하려는 욕심 때문. 지난 2월부터 이 체조클럽을 지도하고 있는 강사 박정미(33.여)씨는 "대회를 앞두고 있으면 회원들간의 대화가 줄어들어요. 말 없이 연습에만 몰두해요. 클럽 대표로 뽑히지 않았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지만 얼굴 표정에서 실망감이나 부러움을 읽을 수 있거든요".
이 체조클럽에서 그 어떤 문제보다 경기 출전 선수 선발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것도 이 때문. 클럽 운영과 관련된 사항은 회장과 총무가 운영위원들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지만 선수 선발은 전적으로 강사에게 일임한다.
지난 11일 울산에서 열린 대회의 참가 선수는 강사가 전체 회원들에게 작품을 가르친 뒤 개인 오디션을 거쳐 뽑았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 모였다고 해서 운동만 하는 것은 아니다.
봄.가을 야유회 등 1년에 4번 정도는 회원간 친목도모를 위한 단합대회를 갖는다.
연말이면 불우이웃을 위해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모은다.
지난해 말에는 홀몸노인과 어린이 가장 9명에게 쌀 20㎏씩을 전달하기도 했다.
대구U대회 때는 약소국 선수들을 위한 서포터스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대구시로부터 스포터스 인증서를 받은 회원만도 19명에 달한다.
활기찬 율동으로 아침을 여는 배수지체조클럽 회원들은 말한다.
"좀 더 건강하게, 더욱 더 활기차게 생활하려는 사람들에겐 언제든지 문을 열어놓고 있으니 아무런 부담 갖지 말고 오세요"라고.
송회선기자 song@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