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어머니와 가래떡

어릴 때의 일이다.

가래떡을 만들기 위해서 어머니와 함께 방앗간에 갔다.

요즘은 주문만 하면 되지만 당시만 해도 방앗간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차례가 되면 떡을 뽑았다.

떡 뽑는 기계는 녹즙기 형태였는데 찐 떡을 기계의 윗부분에 넣고 누르면 떡이 원통형의 홈으로 밀려나가서 가래떡 모양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떡을 넣는 기계 안쪽 모서리에는 항상 떡이 붙어있기 마련이었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머니께서 갑자기 손가락을 기계 안으로 넣더니 모서리에 붙어 있는 떡을 긁어 내셨다.

그리곤 필자의 입으로 손가락을 내밀었다.

어머니께서는 계속 고개짓으로 먹으라고 재촉하셨다.

일순 부끄러움이 일었지만 어머니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어머니의 손가락에 붙어있는 떡을 먹었다.

어머니께선 맛있냐고 물으셨고 필자는 그렇다고 끄덕였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선 흐뭇한 표정을 지으시며 몇 번이나 떡을 주셨고 필자는 계속 받아먹었다.

잠시 후 멀리서 쌀을 갈고 있던 방앗간 주인이 손을 넣으면 위험하니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계속 뭐라고 중얼거리며 어머니의 흉을 보았다.

훔친 것도 아니고, 그저 기계에 붙어 있던 떡을 떼 내어 먹는 것이었지만 주인이 보기엔 좋지 않아 보였던 모양이다.

그 때의 어머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외면한 채 무안해 하던 어머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먹이고자 애썼던 어머니!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이런 일을 허다하게 겪으며 부끄러움을 멍에처럼 짊어지고 생활을 꾸렸던 어머니! 어머니의 마음이 녹아 있는 그 떡은 떡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절절한 사랑의 상징이었다.

그 때부터 반드시 효도를 하리라 다짐을 했건만 아직 이렇다 할 효도라곤 해본 적이 없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필자는 최대한 어머니께 근심을 주지 않게 끔 노력해 왔고, 실제로 큰 일 없이 평탄한 삶을 살게 되어 근심거리는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도 효도라고 할 수 있을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주말엔 부모님 모시고 단풍놀이라도 갔다 와야겠다.

어머니 집에 들어서는 순간 어머니께서는 버선발로 맞아 주실 게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으니 참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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