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후반부터 봉산거리를 중심으로 속속 들어선 대구의 화랑들은 작가와 미술을 사랑하는 시민과의 관계를 밀착시키면서 미술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증대시켜 왔다.
그러나 화랑은 아직 시민들 곁에 그리 친숙한 상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최근의 한 조사(김성희)에 따르면 대구지역 화랑이 지역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반면에 운영이 매우 폐쇄적이며 일반 시민들과의 대화는 원활하게 이루어지 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들의 관심을 화랑이 효과적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공연예술의 대중적 친화력에 비하면 전시예술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전시예술이 대중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서지 못한 까닭은 정부지원의 상대성, 예술 마케팅 그리고 고객의 소비 수준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봉산문화거리 사무국장으로 있는 최원기씨는 "봉산거리를 시민과 보다 가까운 문화거리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봉산문화협회에서는 장차 봉산문화회관의 개관과 함께 조각공원을 만들어 명실상부한 봉산 문화의거리를 조성해 나갈 것이라 하니 그 기대되는 바가 크다.
그것이 어디 미술인들이나 봉산동 주민들만의 소망일까.
문화란 일정 집단의 오랜 삶의 침전물이다.
거기엔 시간과 구성원간의 합의가 녹아 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미술 작가와 화랑 그리고 시민들이 공유하는 희망을 거리 위에 쏟아내야 한다.
미국 시애틀의 도시거리는 19세기 유럽풍의 고전 건축미와 현대미가 조화롭다.
그 가운데 낡은 석조건물의 지하상가에 불과한 언더그라운드는 세계인들이 찾는 문화거리다.
해수면이 낮아져 생겨난 그 지역의 인문사와 미술관, 박물관, 그리고 크고 작은 유무형의 다양한 문화 상품을 개발하여 여행자를 불러들인다.
거기엔 언더그라운드를 중심체로 하여 그와 연계된 부수적인 볼거리와 팔거리를 고루 갖추고 있다.
서울의 인사동거리 역시 활력이 넘치는 이유가 있다.
옛내음이 밴 낡은 것과 현대적인 것, 값비싼 것과 싼 것들이 함께 조화롭게 공존하면서 시민들의 선택에 반응하고 있는 점이다.
그래서 거리엔 크고 작은 이벤트가 늘 끊이질 않는 것이다.
핵심은 중심가치와 연계되는 다양한 주변가치들이 서로에게 흡입력을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기존의 대구 화랑들이 특별한 취향을 가진 소수 고객 앞에 놓여 있었다면 이젠 과감하게 그 모습을 벗어 던져야 한다.
비록 상업화랑이지만 사회적 가치 창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미래의 잠재층을 구축해나가야 한다.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종래의 그 박제화된 이미지를 과감하게 바꾸어가고 있듯이 일반 화랑들도 점차 지역사회의 문화교육적 기능과 미적 체험을 가능케 하는 전시공간으로 변화를 시도해 나가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미술인만의 화랑거리가 아니라 미술문화를 즐기고 그 연계된 갖가지 소품을 보고 만지면서 구매할 수 있는 소위 문화장터 거리가 되어야 한다.
또한 규모는 작되 마치 실개천 같은 각기 특성이 부각된 다수의 화랑들이 있어 작은 손들의 취향에도 다기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봉산거리는 시민의 손으로 예혼의 불을 지피고 미담을 피어나게 할 것이며 익살과 활력이 넘치는 거리로 성장(盛裝)하여 지역사회의 문화적 공급원으로 제 위치를 견고하게 지키게 될 것이다.
육군3사관학교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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