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문제 해결의 관건은 미국이 북한의 불가침협정 요구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있다.
미국은 미 의회의 승인을 필요로 하는 불가침협정은 생각할 수 없고, 단지 문서에 의한 대북 안전보장은 6자 회담의 테두리 내에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며, 북한은 최근 비록 비공식적이나마 이러한 문서에 의한 보장을 검토할 용의가 있는 것으로 내비치고 있다.
북한이 그들의 불가침협정 요구가 전부 수용되지 않더라도 미국과의 외교적 타결을 원한다면 그 이유는 핵 문제 해결 뒤에 올 경제적 지원을 안중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북한의 의중에 안보문제도 중요하지만 역시 경제적인 지원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체제보장과 관련된 문제는 북.미간에 합의가 궁극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한국으로서는 북.미 안보 논의의 결론이 어떻게 되며 그 의미가 어떤 것인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북한이 왜 미국의 안보 보장을 필요로 하는가 하는 문제는 미국이 세계를 대표한 핵무기 확산 금지조약(NPT)의 주 당사국이 되어서가 아니고 주한미군을 유지하면서 한반도에서 중요한 안보상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주장에 의하면 한반도에서 미국은 남한을 강점하고 있으며 소위 한반도 안보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종속적인 위치에 있는 한국보다 수장의 위치에 있는 미국과 합의를 해야 실제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중요한 근거는 휴전협정과 UN사 체제이다.
즉, 북한과 휴전협정을 체결한 당사자는 한국이 아닌 유엔사령관이고, 한반도 전쟁 발발시 남한의 작전통제권도 UN군 사령관에 있기 때문에 북한이 상대할 안보상의 상대는 UN군 사령관을 배출하고 있는 미국이라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다.
한반도에서 65만 병력을 가지고 있고 한국의 안보를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수용할 수 없는 주장이다.
이러한 북한의 부당한 주장에 대응하기 위하여 한국은 미국과 협의하여 이미 80년대부터 휴전협정을 운용하는 정전위원회 수석대표를 한국군 장성으로 임명하였으나 아직 북한은 한국군 수석대표와 마주 앉기를 거부하고 있으며 따라서 정전위원회의는 비서장급에서 유지되고 있다.
1996년 한국은 군사 정전협정 체제를 남북한 당사자가 되는 평화협정 체제로 전환하기 위하여 정전협정 당사자에 의한 4자 회담을 제의하였다.
4자 회담은 북한의 수락으로 수차례의 회담을 거듭한 바 있으나 1998년 김대중 정부 아래에서 중단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한간의 직접 접촉을 더 선호하였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북한 핵 문제가 6자 회담 테두리내에서 타결되고 그 과정에서 미국에 의한 대 북한 서면 안전 보장이 이루어지면 한반도에 있어서 안보의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라는 북한의 주장이 또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것을 한국은 알아야 한다.
이것은 한국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더라도 휴전협정과 UN사 그리고 북.미 서면 보장이라는 외교적 사실이 그러한 주장을 약화시키는 요소가 될 것이다.
따라서 북.미간의 안보보장이 타결되는 시점에 한국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즉, 한반도의 안보에 관하여 주된 책임을 진 나라는 미국이 아니고 한국임을 공식으로 분명히 함과 동시에 한반도의 휴전협정체제를 남북한간의 평화 체제로 이양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반도에 실질적인 평화체제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한국은 북한의 대미 불가침협정 요구가 있을 때 진작 이러한 입장을 밝히고 남북한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대북 안보 보장도 그 일환으로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외교를 전개해 왔어야 했다.
6자 회담 속에서 핵문제 타결이 시급한 현시점에서 한국이 남북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무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국의 요청으로 한반도에 손님의 입장으로 온 미국이 북한과 안전보장에 관한 합의를 하면서 남북한간에는 한국이 서명하지 않는 휴전협정만을 안보관계의 법적 기초로 남겨두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하지 않으면서 한국 외교의 능력 부족만을 부각시킬 따름이다.
유종하(서강대 교수.전외무부 장관)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