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인이다.
그런데 나는 어떤 차원(dimension)의 시인인가? 그것을 이제부터 얘기해보려고 한다.
어떤 레테르를 붙여서 내가 나를 말해야 한다니 참 딱한 일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가 그것을 요청한다.
불행한 일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의식하지 않고 즐겁게 재미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상태가 아닐까 하기 때문이다.
이만 전제하고 얘기를 한번 꺼내보기로 하자.
진보니 역사니 이데올로기니 하는 말들을 싫어할 뿐 아니라 관념으로는 무시하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
내재적 접근이니 경계인이니 하는 알쏭달쏭한 말 즉 궤변으로 사태를 호도하려는 사이비 지식인을 싫어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
지식인과 지성인을 구별해서 대하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
어떤 방면의 지식을 좀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지성인이 되지 않는다.
사리를 공명정대하게 판단하고 뭣보다도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한다.
그것이 지성인의 자격이라고 믿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
지성인은 궤변을 싫어하고 미워한다.
지성인은 솔직해야 한다.
허세를 부리지 말아야 하고 '체'하는 쇼맨십 같은 건 생리적으로 싫어하는 자질의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아직 여기에 미달이기 때문에 스스로 지성인임을 말하지 못하겠다고 자인하고 자백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
왜 나는 시인인가? 존재하는 것의 슬픔을 깊이 깊이 느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
그 중에서도 사람이란 더없이 슬픈 존재다.
사람으로 태어난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깊이 깊이 느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이 점에 있어 많이 부족하다.
그것을 솔직히 남 앞에 털어놓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
그 상태를 시로 쓰고 있기 때문에 작품(Poem)으로 다듬어보려고 힘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
유명한 철학자이자 평화운동가인 B·러셀이 자기 제자(시인 T.S 엘리어트)의 아내를 범하고도 선선한 얼굴로 제자를 대한 짓거리를 미워하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
미워할 정도가 아니라 구역질이 난다.
그 위선이 말이다.
남의 가정(그것도 자기가 가르친 제자의)의 평화를 유린해놓고도 무슨 놈의 평화운동인가 말이다.
민중이 어떻다고 하며 민중의 편에 서서 사회운동을 한다는 자가 돌아앉아서는 고급 양주만 찾는 그런 행동거지를 내던지지 못 한다면 그 또한 위선자가 아닌가? 나는 그런 자가 곁에 다가서는 것도 역겹기 때문에 시인이다.
체 게바라는 평생에 한 여자만을 사랑하지 못 하는 자가 민중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말짱 거짓말이라고 했다.
그 말의 타당성을 진심으로 믿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
쿠바에서의 높은 벼슬자리를 헌신짝 버리듯 내던지고 볼리비아의 혁명을 도우러 가서 체포되어 처형됐기 때문에 나는 그를 진짜 혁명가라고 믿고 그를 생각할 때마다 얼굴이 절로 부끄러움으로 화끈거리기 때문에 그나마 나는 시인이다.
시인이란 절대자유를 누리려고 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런 자유는 현실에는 없다고 깨닫고 있으면서도 심리적으로 추구한다.
그런 상태를 깊이 깊이 의식으로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
나는 언어를 버리고 싶고 언어로부터의 해방을 절실히 희구하기 때문에 그나마 나는 시인이다.
그것이 그러나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히 또한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나는 시인이다.
언어로부터의 해방은 의식으로부터의 해방이요, 절대자유의 경지가 된다.
자유여 왜 너는 나에게로 오지 않는가, 그 탄식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것들 외에도 물론 더 첨가해야 할 조건들이 없지도 않다.
그러나 이 정도의 자기소개를 통해서도 내가 어떤 차원의 시인인가 하는 것을 짐작은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시인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시인 외의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될 자신이 없고 되기도 싫다.
내가 이런 소리를 공개적으로 해야 하다니 참말로 눈물겹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우원식 "최상목, 마은혁 즉시 임명하라…국회 권한 침해 이유 밝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