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자리'
입안에서의 한 번 되뇌임만으로 그리움이 밀려온다.
모든 곡식과 열매들이 결실을 맺어 풍성해지는 농부의 맘, 곳간과 달리 한 잎, 두 잎 잡고 있던 손아귀의 힘을 스르르 풀어버리는 나무처럼 빈 자리란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 우리에게 공허함을 준다.
"니는 언제 시집갈라고 그카노?"
현관문을 들어서는 내게 우리 큰아버지는 인사 대신 타박부터 주신다.
1년전만 해도 또 그 말씀이냐는 생각을 하며 입을 삐죽였을 나지만 올 추석은 여느 해와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년 안으로는 갈께예~. 그러니까 빨리 나으세요. 편찮으시면 제 손은 누가 잡아줘예~?"
다섯해 전 우리 아빠는 교통사고로 아빠의 자리를 비우고 떠나셨다.
그 빈 자리를 큰아버지께서 채워 주셨는데 그 자리마저 이젠 비워지려 한다.
8개월전 병원에서는 췌장암이라는 진단과 함께 3개월이라는 시간을 큰아버지께 주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농사를 70노인 당신 혼자서 무던히도 잘 지켜오셨는데, 소화가 계속 잘 안되신다며 병원을 찾으셨는데 너무 늦었단다.
몹쓸 암덩어리가 이젠 너무 많이 번졌다고….
큰아버지는 힘들다는 병원 치료도 당신 특유의 인내심과 용기로 잘 견뎌내시고 병원에서 준 시간보다 4개월의 시간을 더 가지고 계셨다.
병원에서도 큰아버지의 병을 이기려는 의지에 놀랐다고….
하지만, '해피엔딩 소설속에 나오는 얘기같은 기적'은 현실에선 길지 못했다.
추석을 앞두고 악화된 병세, 큰아버진 명절을 당신 집에서 편히 보내고 싶으시다며 병원을 나오셨다.
"큰아부지 죽드세요?" "그래. 이틀 살 거 하루라도 더 살라꼬 내가 이거 다 묵는다".
복수가 차면서 큰아버지의 소화력은 거의 바닥에 가 있었다.
눈이 큰아버지의 발로 갔다.
오랜 등산으로 생긴 커다란 물집처럼 큰아버지의 발은 퉁퉁 부어 있었다.
발을 주물러 드리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 해서 눈을 더 크게 떴지만 떨어지는 눈물을 숨기지 못했다.
"괜찮다.
다 왔다 가는긴데 뭐…".
퀭한 눈으로 날 바라보시는 큰아버지를 보며 아빠 때문에 이렇게 되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더 맘이 아팠다.
사랑하는 막내 동생을 먼저 보내시고 눈물도 흘리시지 못한 채 가슴으로 우신게 병을 만든 것만 같아 더 눈물이 나고 안타까웠다.
추석 아침, 차례상에 제사를 지내는데 두건을 쓰고 차례를 드려야 할 큰아버지가 큰 방 안에 계시고 큰 오빠가 차례 준비 하시는걸 보니 예전 차례상에서 아빠의 뒷모습을 찾으려 했던 생각이 들었다.
큰아버지의 모습을 뵐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기분이 들었다.
차례를 마치고 성묘하러 나서는데 큰아버지는, "내가 가야 안되겠나? 인사 또 할 날이 있겠나?"
제대로 서시지도 못하면서 옛날 조상을 섬기는 양반 가문 장손으로의 역할을 다하시고 싶으셨나보다.
오빠와 언니들의 만류에 큰아버지는 눕지도 못하는 잠을 청하셨다.
의자에 몸을 기댄 채 힘든 잠을 주무시는 모습을 뒤로 하고 산소로 행했다.
아빠의 산소 위를 손으로 가리키며 큰아버지의 자리를 상의하는 오빠들을 보며 이번에는 기적이 생길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빠~. 큰아버지 조금만 더 내곁에 계시면 안될까?'
아무 대답없는 물음이지만 아빠에게라도 부탁하고 싶었다.
성묘를 마치고 돌아와 큰아버지께 갔다.
거울을 보시며, "눈만 감으면 송장이라 카겠제?" "아니라예~ 잠이 좀 부족하셔서 그렇지예". 가족들이 성묘가고 나서 혼자 거울을 보시며 변해버린 당신 모습에 무척이나 기분이 울적하셨나 보다.
우르르 밀려왔다가 한꺼번에 모조리 빠져 나가는 파도처럼 가족들은 추석 연휴를 마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추석이 일주일 정도 지나 커다랗던 달이 반쯤 깎였을 즈음 새벽. 너무도 크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 엄마는 거의 제 정신이 아닌듯한 울먹이는 목소리로 "우야노. 우야노. 큰아버지 돌아가실거 같단다.
우야노?"
새벽 3시반, 엄마 동생들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
제발 아직은 가시지 말라고, 조금만 더 기다리시라고 가는 차안에서 계속 빌었다.
중환자실 앞에 가서 환자 현황표를 보니 큰아버지 성함이 없었다.
다행이다.
'일반실로 옮기셨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안내데스크로 가서 물어보니 10분전에 운명하셨다고 사무적인 말투로 내뱉는 안내직원의 모습에서 예전 아빠의 사망소식을 안내직원으로부터 듣던 상황과 똑같음에 다시 한번 몸서리쳐졌다.
좀 전 중환자실 앞 화이트보드에서 환자의 이름을 지우개로 휙 지우던 간호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세상에서 생을 마감함과 동시에 서서히 잊혀지듯 이름이 지워지는 것이었다.
10분전만 해도 씌여 있었을 우리 큰아버지는 그렇게 쉽게 지워졌던 것이다.
그렇게 큰아버지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에 비어있던 묘자리에 큰아버지는 생전 눕지 못하시고 주무신 한을 푸는 듯 편안하게 누워 긴 잠을 청하셨다.
인간이 와서 다시 돌아가 빈자리를 채우고 큰 댁의 큰아버지 방에는 또다시 빈자리가 생겼다.
하나를 채우고 나면 다른 하나가 비워지고 또 채우고 나면 다른 하나가 비워지고 또 그 빈자리를 다른 것이 채우고.
삼우를 지내고 나서 어머니께서 꿈을 꾸셨다고 한다.
두 형제분이 흰 말, 그것도 날개달린 백마를 타고 드넓은 초원위를 달리시더라고.
우리에겐 빈 자리를 남기고 떠나셨지만 아마도 두 분은 또다른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달리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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