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1일 노무현 대통령은 예고없이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시 민주당 정대철 대표의 '대선자금 200억 모금' 발언이 불거지면서 대선자금 규모를 두고 의혹이 증폭되자 회견을 자청한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여야 모두 선관위에 신고된 법정 선거자금만 아니라 대선에 쓰여진 정치자금과 정당의 활동자금 모두를 포함해 전모를 공개하고 검증받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콧방귀도 끼지 않았고 이후 공개검증 제안은 유야무야 됐다.
지난 대선 당시 중앙선관위가 정한 법정선거 비용 한도는 341억원. 법정선거 비용은 3주(지난해 11월27일~12월17일) 동안에만 쓰도록 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대선자금으로 226억100만원, 민주당은 266억5천100만원을 썼다고 신고했다.
그러나 정치권 인사 누구도 신고액을 액면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마디로 '억지춘향식 신고'라는 얘기다.
각 당이 대선기간 이전부터 정당 활동비를 선거자금으로 편법운용하면서 '선거자금 총액 한도규정' 자체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 활동비를 선거비용으로 합산하면 액수는 그야말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각당 공히 대선 당시 수천억원을 썼다는 사실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 짜맞추기식 축소신고를 하다 적발되는 경우도 잇따랐다.
지난 대선에서 선거비용과 관련한 위법사례는 15대 대선의 적발건수 237건의 두 배에 가까운 456건에 달했다.
위반유형으로는 △선거비용 축소.누락 보고(215건) △자원봉사자 대가제공(43건) △위법 선거운동(13건) △유급사무직원에 대한 활동비 지급 등 대가제공 사례(44건) 등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적발건수는 빙산의 일각이란 지적이다.
최근에는 대선 막판 부동층 흡수와 조직 동원을 위해 한나라당 중앙당이 각 지구당에 지급된 '실탄' 규모가 공식회계 처리된 금액의 2~4배에 이를 것이라는 정당 관계자의 증언이 나오는 실정이다.
"선거일을 며칠 앞두고 중앙당 계좌에서 지급돼 선관위에서 회계 처리된 돈이 대구.경북 지구당별로 4천만~5천만원에 이르며 장부에 기재되지 않은 현금은 대선기간 동안 두세 차례에 걸쳐 8천만원 안팎"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역의 한 지구당 관계자는 "당비를 모아 중앙당에 건넨 뒤 다시 되돌려받는 형식이었다"면서 "그러나 당비보다 많은 액수를 받았고 돈을 우선 집행한 뒤 회계처리를 하지 않다가 대선 이후 정당 활동비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대구.경북 지구당 모두 비슷한 규모의 돈이 건네졌을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이 같은 탈법관행들이 선거법상 한도규정을 비웃고 있다는 것이다.
회계장부가 있다고는 하지만 명목상의 장부일 뿐 정치자금의 입출금 거래는 당의 가장 중요한 극비사항이다.
SK 돈 100억원 문제가 불거지고 검찰이 한나라당 계좌를 추적하자 발끈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선거운동 준비소요 비용이나 선거사무소 설치유지 비용, 선거차량 운영비용 등을 정당 활동비로 분류하는 현행 선거법도 대선자금 투명성 확보에 심각한 걸림돌이다.
선거 준비기간에 쓴 정당 활동비와 대선기간 중 자금지출의 차이가 없는데도 따로 구분돼 탈법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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