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금 대구 법조계는(2)-전문화 급해진 변호사 업계

"구조조정이 가장 필요한 곳이 지역의 재야 법조계가 아닐까요?"

한 중견변호사는 대구.경북의 변호사업계가 예전 그대로의 시스템을 갖고는 혁명적인 변화기를 제대로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지역 변호사업계에는 전문가 양성, 업무다각화, 로펌 활성화 등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

▲전문가가 없다=지난달말 대구시의 한 간부는 유료도로 운영과 관련, 민간투자회사들과의 협상을 위해 서울의 전문 변호사에게 자문을 받으려다 깜짝 놀랐다.

변호사가 비행기를 타고 대구로 향하는 순간부터 일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를 계산해 시간당 최고 44만원을 줘야했기 때문.

이 간부는 "변호사 한명을 데려오는데 하루에 수백만원이 든다는 것에 놀랐고, 대구에 괜찮은 경제전문 변호사가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고 말했다.

대구에는 전통적인 업무인 민.형사 사건만 다루는 변호사들만 있을뿐, 그 외의 업무를 맡길 만한 전문적인 변호사는 손꼽을 정도이다.

한 변호사는 "사실 민.형사사건을 제외하고는 적정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분야가 제대로 없다"면서 "경제여건이나 수요자의 마인드 등에 비추어 아직까지 전문 변호사가 뿌리 내릴 수 있는 토양이 조성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대구시나 규모가 큰 업체의 경우만 봐도 해외투자 유치, 기업과의 중요 협상.계약 등에는 반드시 서울의 유명 법무법인의 변호사에게 자문을 맡기고 있다.

대구에서 그만한 전문가를 구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삼일회계법인의 최봉태(42)변호사는 "지난해말부터 구조조정전문회사인 골든 브릿지와 제휴해 구조조정팀을 가동하고 있지만, 일거리가 별로 없다"면서 "전문 영역만 파고들다가는 얼마못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법률 수요자들의 잘못된 마인드도 제대로 된 법률서비스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대구지방변호사회가 운영하고 있는 '중소기업고문변호사단'을 활용하고 있는 지역 기업은 고작 10개에 불과하다.

1년에 10만원만 내면 변호사들로부터 상담, 자문을 받을 수 있는 데도 이를 아예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지방변호사회 배동업 사무국장은 "평소 알고 있는 변호사에게 무료 상담을 받으려는 기업인만 있을 뿐, 정당한 법률서비스를 받으려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이런 환경에서 제대로 된 전문 변호사가 양성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로펌은 시대적 추세?=효율적이고 전문적인 법률서비스를 위해서는 로펌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구.경북의 로펌(법무법인)은 모두 15개. 얼핏 그럴 듯한 숫자인듯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로펌의 강점을 어느 정도 살리고 있는 것은 3,4곳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함께 사무실을 쓰고있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4∼6명의 변호사가 소속돼 있는 작은 규모일 뿐,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큼직한 로펌은 아예 없다.

한 관계자는 "지역의 상당수 로펌은 사무실과 인력의 낭비를 줄이기 위한 경영합리화 차원에서 생겨난 것이어서 로펌의 본래 취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 탓에 대구의 로펌들은 노동, 세무, 특허, 부동산 등으로 업무를 다각화하려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적정한 수익을 보장받는 민.형사소송에 아직까지 매달리고 있다.

2005년 법률시장 개방으로 외국계 로펌이 서울로 진출하면, 서울의 로펌이나 변호사들은 지방 공략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로펌 활성화가 시급해졌다.

실제로 최근들어 서울에서 내려온 브로커들이 병원 영안실을 돌며 교통사고사망자 보상소송을 서울에서 제기토록 권유하는 사례가 적지않은 것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수백명의 소속 변호사를 거느리고 매월 수백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서울의 유명 로펌과는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역에서도 일정 규모 이상의 로펌이 만들어져 경쟁력을 가지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다.

한 변호사는 "서울의 로펌이 대형 할인점이라면 대구의 로펌은 구멍가게 수준이라는 비유가 적절할 것"이라면서 "조만간 10명 이상의 변호사를 보유하고 전문성을 담보한 로펌이 몇개 이상 생겨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로펌 활성화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는 이들도 없는 않다.

한 변호사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연고주의와 안면을 앞세워 수임을 하는 지역 변호사업계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