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제>노숙자 부부의 깨어진 '꿈'

"너무 이뻐 잘 키우려 했는데..."

태어난지 3일된 영아를 데리고 빈집에서 잠을 자다 아기가 저체온증으로 숨지자 시체를 병원에 두고(본지 27일자27면보도) 달아났던 노숙자 부부의 비참한 행로가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산모 유모(29)씨는 시체유기 혐의로 구속됐고 남편 신모(34.충남 홍성)씨는 30일 군무이탈 혐의로 헌병대로 넘겨졌기 때문.

경찰조사 결과 신씨는 지난 94년 강원도 홍천지역에서 군복무중 이탈, 지금까지 노숙자 생활을 하며 신분을 감춘 채 살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신씨는 당초 영아사체유기 혐의로 조사를 받을 때 '고아로 생활하다 어느새 호적이 사라졌다'는 말을 해 신분을 속였다가 지문검사를 통해 신원이 밝혀진 것.

산모 유씨는 동구 신암동에 집과 가족이 있음에도 불구, 최근 몇년간 집을 나와 노숙자생활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유씨의 정신상태가 좋지 않고 가정형편도 어려워 가족들이 제대로 돌보지 않아 가출을 반복하다 노숙자로 전락, 이같은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2001년8월쯤 노숙자 생활을 하며 알게 돼 지금껏 경대교 다리 아래, 여인숙 등을 돌며 동거생활을 해 왔으며 유씨가 출산을 앞두자 중부경찰서 동부지구대에서 병원을 소개받아 아기를 출산했다는 것. 그리고 하루동안 병원에 머문 유씨는 24일 병원을 나와 중구 삼덕2가동 관음사 인근 빈집에 들어가 머물던 중 25일 새벽쯤 아기가 숨을 쉬지 않자 병원에 아기 사체를 두고 나왔다. 이들은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폐휴지 등을 줍거나 시내 무료급식소 등에서 식사를 해결해 왔으며 출생 당시 아기의 몸무게는 3.7kg으로 건강이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아기가 너무 예뻤고 잘 키우려 했는데 잠을 자다 보니 어느새 숨을 쉬지 않았다"며 "겁이나 병원에 놓고 나왔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아기는 숨질 당시 수건 한장만을 덮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해 주었다. 노숙자들에 대한 부실한 우리 사회안전망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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