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육정상화'-'아예 도시로'

경북도내 소규모 초등학교의 통폐합을 둘러싸고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통폐합에 찬성하는 측은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 학습권 보장 등 교육여건 개선을 내세우는 반면, 반대측은 인간교육, 올바른 사회성 함양 등을 이유로 통폐합에 반대하고 있다.

통폐합을 실시한 경북도내 초등학교와 통폐합을 거부한 소규모 학교의 풍경과 사연을 담아본다.

▨통폐합 초교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련리 대가초등학교. 1999년 대서초교와 금수초교를 통폐합한데 이어 올해 3월 대성초교를 통폐합했다.

인근 초등학교를 줄줄이 통폐합했지만 전교생은 6학급에 113명.

지난 달 열린 운동회는 썰렁했다. 올해 초 통폐합한 대성초교 학생 수만큼 학부모 의자를 준비했지만 전 대성초교 학부모들은 거의 참석치 않았다. 운동회에 참석한 몇몇 학부모들도 이방인처럼 멀뚱히 앉았다가 서둘러 떠났다.

"우리학교라는 인식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자신이 다녔거나 동네에서 늘 보던 학교대신 다른 마을 학교 운동회에 참석하려니 어색한 모양이다". 이 학교 박해진 교감의 말이다.

그러나 이런 썰렁한 운동회도 통폐합을 당한 인근 대성초교 학부모들은 부럽기만하다.

폐교된 대성초교를 졸업한 옥성리 한 주민은 "모교가 없어졌다. 동창체육대회를 하려고 해도 장소가 없다". 이 마을 주민들은 그러지 않아도 농촌엔 빈집이 늘어가는 데 학교마저 문을 닫으니 텅 빈 것 같다고 말한다.

통폐합은 시골탈출을 부추기기도 한다. 통폐합 직전 대성초교 전교생은 36명. 그러나 통폐합 후 대가초등학교로 옮아 간 학생은 23명. 졸업생만큼 입학생이 있다고 가정할 경우 약 37%에 해당하는 학생이 성주읍이나 대구로 전학했다.

이왕 학교를 옮겨야 한다면 소규모 학교 대신 도시의 큰 학교를 택하겠다는 것이다.

"통폐합을 계기로 아예 인근의 대도시로 이사가는 사람도 있다. 자녀를 대도시의 학교에 보내고 학부모들은 농촌으로 출퇴근하는 식이다". 교사생활 33년째인 대가초교 박 교감의 경험에서 나온 설명이다.

"걸어다니던 애가 2km떨어진 학교로 차를 타고 다닌다. 등하교 땐 꼭 그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요즘은 시골 국도에도 자동차가 많다. 먼 거리 등하교는 불안하다". 옥성리 주민의 다소 불만 섞인 목소리다.

대가 초교는 미니버스 3대를 오전에 한번, 오후엔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눠 운행한다. 통폐합 지역 학생들을 나르는 것이다.

그러나 소규모 농어촌 학교 통폐합은 장점도 많다. 전교생 30명 안팎의 소규모 초등학교에 불가피한 복식수업이 통폐합 후엔 사라졌다. 담임 교사의 학생지도도 용이하다. 전교생 수가 늘어난 만큼 '또래집단'을 형성해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도 있다.

"친구들이 많이 생겨서 좋다. 같은 학년끼리 수업하니 공부에도 훨씬 도움이 된다". 대성 초교에서 대가초교로 온 김준욱(5년)군은 즐거운 표정이다.

▨소규모학교

경상북도 의성군의 한 소규모 초등학교. 전교생이 20명이 안 되는 교정엔 적막감이 감돈다. 가늘게 내리는 빗소리가 고스란히 들릴 정도다. 소규모 학교를 보는 눈은 교사들마다 엇갈린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공부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고 말문을 연다. "형편만 되면 모두 대도시 학교로 자녀를 보낸다. 남은 학생들은 열등감에 시달린다". 이 교사는 학부모들도 별 의욕이 없어 보인다고 말한다.

수업 분위기를 망치는 데는 산더미 같은 공문서도 한몫을 한다. 교사가 50명인 학교와 교사가 5명인 학교가 처리해야하는 공문서의 양이 꼭 같다는 게 이 교사의 설명이다.

50명이 나눠서 할 일을 5명이 처리하자니 눈코 뜰 새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가끔 교사가 출장을 가면 복식교실인 2개 학년이 종일 놀아야 한다.

드물지만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통합수업을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교무 주임이나 교장이 대신 교실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제대로 수업이 될 리 없다.

"학습자료 부족으로 주입식 교육이 불가피하다. 학교 규모가 작으니 근처에 문방구도 하나 없다. 준비물을 챙기지 못하니 교사는 주입식 수업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 이 교사는 또 교사 수가 적어 특기적성 교육도 2,3개 분야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다른 교사는 "준비물은 부족하지 않다. 학교교비나 교육부 지원으로 모든 준비물이 제공된다. 학생들이 문방구에서 사야할 것은 거의 없다. 게다가 학교 주변의 자연은 좋은 준비물이다. 널린 게 나무고 열매다. 도토리를 줍고 녹말을 분리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훌륭한 과학수업이다".

이 교사는 또 "시골학교에는 결손가정 어린이가 유독 많다. 대규모 학급이 구성되면 학생 개개인의 고충을 알고 처방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 교사는 또 복식수업엔 장점이 많다고 말한다. "복식수업에서 교과서를 다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사가 나름대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교과서를 가르치는 차원을 넘어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교사는 소규모학교 통폐합을 위한 '학교 적정규모 유지'에 대해 도대체 학교규모의 적정성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 폐교활용 현황

1982년 이후 올해 초까지 경북도내에서 사라진 학교는 모두 520개. 이들 시설 중 311개가 매각 대부 자체활용 등으로 이용 중이며 47개 시설은 미활용 상태에 있다.

활용시설 중 253개가 청소년 수련장, 종교복지 시설.기업체 훈련시설, 생산시설 등으로 유상대부 중이다.

또 44개가 학생야영장 묘포장 등으로 이용되며 14개가 복지시설 등으로 무상 대부되고 있다.

이외에 책걸상 수리센터, 지역 아트타운, 체험 학습원 등으로 이용되는 시설도 22개에 이른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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