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들고 나서부터 저의 학력을 적어야 할 때가 제일 괴로웠습니다.
양심에 찔리지만 '고졸'이라고 거짓말을 했죠. 이제 그런 사기는 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대구 약전골목에서 한약재료 판매점을 운영하는 이철로(40.대아약업사)씨는 요즘 자신의 학력에 대해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게 됐다는 기쁨에 들떠있다.
최근 경운대학교 한방자원학부 수시모집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늦깎이지만 내년이면 대학생이 되는 이씨가 약전골목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78년. 중학교 1학년 때다.
"간경화 증세가 있던 선친이 자리보전하게 되면서 학교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책가방을 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그의 첫 직장은 한약방을 하던 사촌 누나집. "하루 종일 약재를 물로씻고 자르는 일을 했습니다.
겨울에는 손이 얼어터졌고, 작두질을 하다 손을 다친 것도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제딴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예쁘게 썰지 못했다고 '고참'으로부터 구박도 많이 받았고요".
하지만 이씨가 자신의 가게를 연 것은 약전골목 진출 11년째이던 지난 88년. "세를 얻어 마련한 콧구멍만한 가게였지만 얼마나 기뻤던지요. 좀 더 좋은 약재를 되도록 싼 가격에 구입하려고 혼자서 밤낮 가리지 않고 뛰었습니다".
'중학교 1년 중퇴'라는 학력은 이때부터 그에게 장애물로 다가왔다.
취미생활로 하던 등산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등산학교에 들어가려 했지만 '고졸 이상' 이라는 지원자격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맞선에서도 몇 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할 수 없이 산에 다니다 만난 현재의 부인(39)에게는 '고졸'이라고 속였다.
"나중에 진실을 안 집사람이 집에 못 들어오게 해 며칠간 여관 신세를 지기도 했지요".
97년 약령시 축제 때 약 썰기 대회에 나가 장원을 하기도 하고, 돈도 제법 모았지만 아이들이 커면서 '짧은 가방끈'은 더 큰 짐이 되어 그를 짓눌렀다.
"지금 중학교 1학년인 맏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 제 학력을 사실대로 적느냐 마느냐를 놓고 집사람과 밤새 고민했어요. 결론은 거짓말을 하기로 했죠. 애 기죽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요".
그래도 그때뿐 공부할 용기를 못내던 그가 다시 책을 잡은 것은 99년 10월. 부인이 느닷없이 검정고시학원 수강증을 끊어와 내밀어서다.
"남편이 공부 못한 것이 한이 됐던 모양입니다.
못 배운 남편 만나 고생한 아내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학원수강 6개월 만인 2000년 4월 중졸자격을 얻은 그는 이듬해 대구고등학교 부설 통신고등학교에 입학했고, 내년 2월 졸업할 예정이다.
"내달 16일 치르는 졸업시험에 탈락하면 대학 합격도 무효가 된다"며 책을 펴드는 이씨. 26년째 몸담고 있는 약령시가 살기 위해서는 한방사우나, 한방먹을거리 식당 등 관광객들이 보고 즐길거리가 더 많아져야 한다며 나름대로 방책도 제시했다.
송회선기자 s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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