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소금 장미나 황옥이었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야/불이 뿜어내는 카네이션 화살이었대도/어떤 숨겨진 게 사랑 받을 만큼 당신을 사랑한다/은밀히, 그늘과 영혼 사이에서'. 칠레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100편의 사랑 소네트'에 실려 있는 시 한 부분이다.
이 지순한 시 앞에서 우리는 그가 동조했던 칠레 아옌데 정부가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던 주간에 타계한 바로 그 비극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굳이 떠올릴 필요가 없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난 지는 30년 가깝지만 부르면 가까이 다가오는 그의 시는 아름다운 향기를 끝없이 안겨주기 때문이다.
▲지난해인가, 김지하 시인이 김소월을 기리는 시를 발표해 화제를 낳았다. '고속도로 위로 떠오른 화투짝 같은 달'이라면 '공산명월(空山明月)'보다 현대적인 풀이이다.
적적한 산에 비치는 달의 빛은 아주 밝지만, 차를 타고 달리는 고속도로 위의 달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메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지 않겠는가. 옛시인과 그의 시를 이렇게 노래한 김지하 시인의 마음을 알 만하다.
▲구텐베르크 이후 활자 매체는 정신문화의 무게에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 왔다. 문학, 그 중에서도 시(詩)는 오랜 세월 동안 그 꽃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벌써 오래 전부터 문학이 사양길을 걷고, '시가 죽어간다'는 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영상화 시대를 맞아 문학이 제공하던 영향력과 재미가 영화.텔레비전.컴퓨터 화면 등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오늘은 '시의 날'이다. 서울.대구 등 전국에서 이 날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다채롭게 마련되고 있기도 하다.
대구에서는 대구시인협회가 대구박물관 강당에서 '시민과 함께 하는 시의 축제'를, 경북 지역에서도 한국문인협회 경북지회가 '낙강시제'를 상주에서 베푸는 등 '시 살리기' 운동에 안간힘을 보이는 모습이다.
계명대 석좌교수의 '마음 붙이기의 시학' 주제의 문학 강연과 시낭송대회(대구), 백일장.문학 현장답사와 체험.심포지엄(경북) 등을 마련했다.
▲그런데 '시의 날'이 '굳이 왜 필요해졌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멀어졌다는 데 그 뿌리가 있는 게 아닐까. 조금 더 확대해서 풀이하면, 우리의 정신문화는 날이 갈수록 뒷걸음질하거나 황폐해지고 있다는 소리로도 들린다.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나 시의 죽음 또는 자살에 대한 논의는 거듭돼 왔다. 문학(시)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 그 옹호가 지상과제라면 씁쓰레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아무튼 이번 '시의 날'을 계기로 세상이 조금 달라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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