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어느 겨울날. 모처럼만의 즐거운 경주나들이를 마친 김성일(45) 씨 가족은 서둘러 경부고속도로에 올라 귀가길을 재촉했다.
매서운 날씨 탓에 따듯한 안방의 온기가 어느 때보다 그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주터널 부근에 이르자 갑자기 자동차의 비상등이 자동적으로 켜지면서 차를 세우라는 신호가 왔다
"무슨 일 일까?". 당황한 김씨는 재빨리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서는 경주터널에서 연쇄추돌 교통사고가 나 통행이 전면 마비됐다는 소식이 나왔다.
경주터널에 설치된 센서(=일종의 컴퓨터 시스템)가 터널내 교통사고를 감지하고 주위에 있는 자동차들에게 터널로 진입하지 말 것을 알리는 메시지를 미리 보낸 것이다.
예정보다 한 시간 반이나 늦게 대구 집에 도착한 김씨 가족은 그러나 온기가 가득한 집안에 들어서면서 '짜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부엌에서는 금방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요리가 끓고 있었다.
김씨의 자동차가 집에 도착하기 20분 전에 홈오토메이션 시스템에 난방과 음식 조리를 명령해 두었기 때문이다.
'컴퓨터, 초고속인터넷, 다양한 기능을 갖춘 휴대전화…' 이미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현대 문명의 총아들은 이 기기들을 적극 활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편리하지만, 조작법을 배우기 싫어하고 성가시게 느끼는 적잖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골치아픈 문명의 '괴물'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왜, 컴퓨터는 다루기 힘들어야만하고 인간을 성가시게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쉬운 컴퓨터 연구'에 몰두한 제록스 팔로 알토 연구소(미 실리콘밸리 위치)의 마르크 웨이저 박사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컴퓨팅'이란 새로운 용어를 1988년 창조했다.
최상의 도구는 사용자로 하여금 그 도구를 이용하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게 하고 수행하는 일에만 집중하게 하여 업무의 생산성을 높인다.
이제 인간이 기계문명의 노예가 아니라 진정한 주인이 되는 셈이다.
21세기 거대한 변화의 메가트렌드가 되고 있는 '유비쿼터스'는 '언제 어디서나 동시에 존재한다'는 의미. 따라서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다종 다양한 컴퓨터가 현실세계의 사물과 환경속으로 스며들어 상호연결되어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어떤 단말기로도 망에 접속하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인간.사물.공간 간의 최적의 컴퓨팅 및 네트워크 환경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지난 8월 우리나라 정부가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으로 지정한 '디지털TV' '디스플레이' '지능형로봇' '미래형 자동차' '차세대 반도체' '지능형 홈네트워크' 등이 모두 유비쿼터스 환경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기반산업들이다.
최근 정부와 IT(정보기술) 업계가 국가정보화의 패러다임을 'U(=유비쿼터스)코리아 건설'로 설정하고, 올해 4월 유비쿼터스코리아포럼을 설립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유비쿼터스 주도권 확보를 위한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일본 소니는 2001년 11월 '유비쿼터스 가치 창조 네트워크'를 회사 슬로건으로 내세웠고 샤프, 도시바, NEC, 히타치 등도 관련기술에 연구개발을 집중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AT&T, IBM,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액션추어, 제록스, 휴렛패커드 등 대기업과 MIT 미디어랩, 버클리대학을 비롯한 대학들도 유비쿼터스 전쟁의 선봉으로 나섰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7년까지 2조 원을 투입해 전체 가구의 61%에 네트워크 망을 건설한다는 '디지털홈 구축계획'을 발표했고, 삼성전자와 LG전자도 각각 '홈비타'와 'LG홈넷' 브랜드를 만들고 본격적인 시장공략에 대비하고 있다.
세계는 벌써 초보적인 유비쿼터스 환경에 들어선 것이다.
완벽한 유비쿼터스 환경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 거의 모든 사물에 컴퓨터를 집어 넣을 수 있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컴퓨터(=일종의 센서)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하나의 칩(chip)에 다양한 기능을 한꺼번에 집어 넣는 SoC(시스템 온 칩:궁극적으로는 칩 하나가 바로 컴퓨터가 된다) 기술이 각광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마이크로(100만분의 1 미터) 수준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SoC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나노(10억분의 1 미터) 기술의 도입이 불가피해 진다.
아주 작은 지능형 기계를 연구하는 MEMS(마이크로머신즈)의 발전도 필수적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 크기의 컴퓨터와 로봇이 일상생활에 숨어 있다가 인간이 필요로 할 때 도와주는 세상이 바로 유비쿼터스 시대다.
아무리 컴퓨터와 지능형 센서, 로봇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편재해 있더라도 각각이 서로 네트워크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유비쿼터스 환경은 실현될 수 없다.
통신기술은 전세계를 연결해 주는 것 뿐아니라 아주 가까이 있는 지능형 기기들 사이에도 커뮤니케이션이 가동하도록 발전해야 한다.
수많은 컴퓨터와 센서, 기기들이 근거리 및 원거리 통신망에 의해 종합적으로 관리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각각의 기기들이 고유한 '주소'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정보의 발신과 수신 사이에 생길 수 있는 혼란을 막을 수 있다.
현재의 인터넷 주소체계인 IPv4(Internet Protocol Version4:43억개의 주소만 관리가능) 보다 4배나 더 많은 주소를 관리할 수 있는 IPv6 기술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원규 박사(한국전자정보통신연구원 IT정보센터장)는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급변하고 있는 정보통신 환경과 산업구조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비쿼터스 시대로의 진입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며 "세계 최고의 IT인프라를 갖춘 우리나라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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