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수 명승지 백도

바다는 그리움이다.

누구나 바다를 만나면 수평선 너머 인연(因緣)의 잔상들을 아련히 비춰보기 때문이다.

첫사랑이 어려있는 해변가의 기억,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파도에 발을 맞히던 기억, 홀로 바다를 향해 고독을 속삭이던 기억…. 뼈 속까지 스며드는 바닷바람은 과거 속에 우리를 붙잡아둔다.

그런 사이 마음은 벌써 바다를 향해 내달린다.

얼마나 흘렀을까. 사람들은 드넓은 화폭에 추억을 한아름 그려놓고는 쓸쓸한 미소와 함께 발길을 돌린다.

다음에 떠올릴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놓고서.

사방이 산으로 뒤덮인 대구 사람들에게 해안 도시는 항상 색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바다에 둘러싸인 섬은 뭍 사람들에게는 그 자체가 호기심의 대상이다.

그렇기에 갖가지 섬을 끼고 있는 전남 여수는 한번쯤 꼭 가고 싶은 곳인지도 모른다.

하얀 물살을 뒤로 한 채 세차게 질러대는 바람의 포효를 뚫고 도착한 곳은 푸른 물결과 기암괴석의 돌섬들 세상.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여수 '백도(白島)' 유람은 그런 설렘으로 시작됐다

여수항에서 쾌속유람선을 타고 2시간 가량 가면 거문도에 이른다.

거문도가 백도유람의 출발지. 거문도항에서 다른 유람선으로 갈아타고 백도로 향한다.

40여분 뱃길에 몸을 맡기면 비로소 백도와 마주치게 된다.

백도는 상백도와 하백도를 포함, 모두 39개의 무인군도로 이뤄진 명승지. 변덕스런 바다 날씨에 억만년을 이어오면서 하나하나 생명을 부여받았을까. 각양각색 바위들의 맵시가 여행객들의 눈을 멎게 한다.

여행객들 중에는 그저 비경(秘境)에 취해 생각의 고리를 잃어버린 사람이 있는 반면 "하얀 돌섬도 아닌데 왜 백도(白島)지?"라고 의문을 갖는 이도 있다.

그 유래가 참 재미있다.

백도는 수면 밑 돌섬들과 합쳐 모두 99개. 100에서 하나 모자란다고 하여 일백 백(百)자에서 한 일(一)자를 빼 백도(白島)라 불리운다

옥황상제의 아들이 바위로 변했다는 서방바위, 용왕의 딸이 바위로 변했다는 각시바위, 돌부처처럼 우뚝 솟아있는 석불바위, 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요술바위 등등. 인간이 돌칼로 깎은 듯 또렷하게 각진 모습은 신비롭기만 하다.

선글라스에 구수한 톤으로 각 바위들의 전설을 들려주는 아저씨, 휘청대는 선상에서 쓰러지면서도 까르륵 웃어대는 천진난만한 여학생들은 유람을 더욱 즐겁게 한다.

2시간 가량의 백도유람을 마치고 돌아온 거문도항. 항구마을로 들어서자 촌스러운 간판과 소박한 동네 사람들의 표정은 우리네 70, 80년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도심의 기계음에 길들여져버린 우리들에게 "거시기, 한번 맛보고 가여"라고 진하게 사투리를 쓰는 몸빼바지 아줌마는 한동안 머리 속에 떠나지 않는다.

승합차 택시를 타고 마을을 가로질러 거문도 등대로 향한다.

차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내려 등대까지 1.3㎞에 걸쳐있는 산책길을 밟았다.

나무 사이로 살포시 보이는 해안절경에 시선을 빼앗기다보면 등대까지의 20분은 훌쩍 간다.

등대옆 관백정에 발을 들여놓자 온통 푸르른 세계가 펼쳐진다.

망망대해의 바다 위로 오직 백색 구름만이 둥실댄다.

저 멀리 통통배가 햇살을 받아 하얗게 반짝이는 물결 사이로 가르마를 탄다.

뻥하니 뚫린 가슴을 진정시키는데는 한참이 걸렸다.

거문도항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에 아쉬움이 묻어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문의) 여수로여행사 061)686-7776, 여수시청 관광홍보과 061)690-2225.

여수는 갓 김치와 서대회로 유명하다.

특히 서대는 이곳 사람들이 제사상에 반드시 올리는 생선. 제대로 된 서대회를 맛보고 싶다면 여수 시내 '똑순이집'에 한번 가보자. 인상좋은 주인 아주머니 손맛에서 우러나온 서대회가 새콤달콤 입안에 달라붙는다.

서대회 한입에 청주(흔들지 않은 막걸리 윗부분) 한잔을 입안에 걸치고 이야기꽃도 피어보자. 밥이 나오면 참기름을 듬뿍 넣고 서대회와 버무려 먹는다.

그러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2명이 먹을 수 있는 이곳 서대회는 한 접시가 1만원으로 값도 저렴하다.

똑순이집 061)666-7711.

글.사진 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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