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거 완전공영제·지구당 폐지되면...

국회의장과 여야 4당이 5일 합의한 완전 선거공영제와 지구당 폐지는 그대로 실시만 된다면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구조를 쇄신할 수 있는 일대 혁명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대선비자금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불신이 어느 정도인가를 정치권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5일 "오늘날 혼란스런 정국은 한국 정당사상 최대의 위기"라며 "고비용 정치구조를 개선하고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회복을 위해 뼈를 깎는 아픔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구당 폐지='돈 먹는 하마'인 지구당은 많은 폐해와 함께 지역 민원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러나 사무실과 조직 운영에 매달 1천~3천만원 안팎의 비용을 들여야 할 정도로 지구당위원장들에겐 엄청난 부담이었다.

때문에 일부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보좌진에게 행정부를 견제하는 정책검증의 역할을 맡기기 보다 지구당 업무를 보게 하거나 보좌진의 월급을 갹출, 지구당 운영비로 쓰도록 하는 관행이 있어왔다. 그나마 원내는 사정이 나았다. 원외는 중앙당의 월사금(?)을 200~300만원 정도 받는다고 해도 비용을 자체 조달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 부담은 실로 컸다.

여기저기 후원자가 있는 현역 의원과 달리 '원외 지구당위원장을 오래 하면 살림 거덜낸다'는 이야기가 나돌정도였다.

따라서 지구당이 사라지면 '연락소' 기능만 남게돼 지구당의 경상비가 대폭 축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앙당의 지구당 지원도 없어진다. 거대 정당의 경우 이 돈만 해도 매월 5~6억원이다. 중앙당 슬림화 또한 가능해진다. 도미노 효과다. 정당구조가 근본적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물론 정치신인들이 기성 정치인과 공평한 입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지구당 폐지가 사무실 축소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인력 감축과 조직 축소가 뒤따라야 돈 안드는 정치 실현이 가능하다. 이 점을 의식, 박 의장도 "지구당 폐지는 사무실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지구당 상근 당직자와 조직을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직선거에 길들여진 정치권이 변화한 환경에 금방 적응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지구당 대신 개인사무실의 형태로 연구소나 포럼 등의 형태로 또다른 사조직을 만들 개연성은 충분하다. 대구지역 한 재선 의원은 "지구당을 폐지한다고 해서 기존에 공을 들인 조직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어떤 형식으로든 개인사무실을 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연히 지구당 폐지가 오히려 각종 사조직의 준동 등 음성적인 금권정치를 부추길 우려도 크다.

중앙선관위 고위 관계자도 "현행 소선거구제에서 지구당 폐지는 의미가 없고 출마자들이 지구당을 없앤다고 조직없이 선거를 치르겠느냐"고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선거제도의 변경 없는 지구당 폐지는 돈 있고 조직 있는 사람이 더 쉽게 선거를 치르도록 하는 폐단을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완전 선거공영제=선거에 드는 비용 일체를 국가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자금력이나 조직력이 없는 참신한 정치신인의 당선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다. 지금도 일정 수준 득표자에 대해서는 선거비용의 상당액을 선관위가 보전해주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조직관리 비용에만 수억원을 쏟아붓는 만성적인 불법선거 운동에 '부분 공영제'는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지난 16대 총선에서 보전된 선거비용은 모두 193억1천만원이었고 이를 대상자(유효투표의 15% 이상 득표자) 수로 나누면 1인당 평균 5천700만원 정도다. 지역구당 선거운동 한도액인 1억2천만원의 45% 수준이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완전공영제가 실시된다면 대략 400억원 이상이 국민세금으로 지출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이쁘지도 않은' 정치권에 혈세를 지원, 선거비용을 지원하는 데 대해 국민들이 선뜻 동의할 지는 미지수다. 세금으로 선거 비용을 대면서도 선거와 정치문화가 바뀌지 않는 것은 국민들이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치제도와 선거문화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것이 그 전제가 돼야 할 것이다. 경북도 선관위 관계자도 "완전공영제가 실시되고 그 이상의 돈이 들지 않는다면 국가적으로는 엄청난 플러스가 되겠지만 현 정치 문화나 제도로 완전공영제가 정착된다고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게다가 완전 선거공영제가 도입되면, 출마자들이 난립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국가가 선거비용을 보전해주니 일단 '나가고 보자'는 식으로 검증안된 신인들이 무더기 출마할 경우 오히려 선거판이 혼탁해지고 유권자들의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선거비용 보전의 조건을 강화하고 그 전에 입후보 자격 요건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더해 기탁금(1천500만원) 상향 조정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또한 "완전 선거공영제의 전제조건은 후보자들이 다른 돈, 불법적인 돈을 안쓴다는 것"이라며 "선관위가 후보들이 다른 돈을 안쓴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선거자금의 입.출금 계좌를 단일화 하고 수표와 신용카드로 비용을 지출하는 등 정치자금 투명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관기자 llddkk@imaeil.com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사진:5일 박관용 국회의장(오른쪽 세번째) 주재로 열린 4당 원내대표, 정책의장 연석회의에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오른쪽부터),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 민주당 정균환 총무가 참석 담소를 나누고 있다. 김영욱기자 mirag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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