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제>동티모르 청소년축구 감독 '빠빠킴'

"자가 오랑, 몽그르띠?(수비는 앞으로, 알았지?)"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의 동티모루 수도 한편에 자리잡은 딜리 스타디움. 잔디가 반쯤 벗겨진 허름한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차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소년들 사이로 한 동양인의 호령이 쩌렁쩌렁하다. 동티모르 청소년 축구단 김신환(46) 감독. 소년들에게 포르투갈어로 작전지시를 내린 김 감독은 기자에게 자신을 '빠빠 킴'(김 선생)이라고 소개했다. 빠빠 킴. 한국에서 비행기로 8시간이나 걸리는 동티모르에서 만난 이 중년의 한국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는데 순박한 주민들과 축구를 사랑하는 아이들을 보니 젊은 시절의 피가 끓더라구요".

축구명문 한양공고, 해군 축구팀, 직장 축구팀에서 15년간 선수로 뛰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면서 접어야 했던 그라운드의 꿈. 한국에서의 실패를 딛고 재기의 기회를 찾다가 지난해 11월 우연히 들른 동티모르에서 그는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었다.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한 그 해, 김 감독은 동티모르인들의 유별난 한국사랑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 대표팀이 포르투갈을 꺾었을 때는 거의 전 국민이 TV앞에서 열광했다고. '이 땅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끝에 그는 유난히 발재간이 좋은 10대 초반의 아이들 45명을 모아 무료 축구교실을 열었다. 축구공과 유니폼은 김 감독과 한국에 있는 지인들의 사재를 털어 마련했다. 기자가 찾아간 지난 달 27일에도 180벌의 유니폼을 공짜로 나눠주고 있었다.

엄격한 '한국식 교육자'로 소문난 그는 이곳에서 유명인사다. 아이들은 아버지 앞에서보다 더 꼼짝 못하고 부모들도 버릇을 들여달라며 체벌을 부탁할 정도로 깊은 신망을 얻고 있다. "나만 아이들한테 미치면 뭘 하나. 당신들도 애들한테 미쳐야 한다고 말했어요". 운동장 한 켠에서 학부형들과 포르투갈어로 나누는 대화에서 한 바탕 '와'하는 공감섞인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의 꿈은 이 아이들을 동티모르의 유소년 축구대표팀으로 성장시키는 것. 축구공과 유니폼을 보관할 이동차량조차 없을 정도로 재원난을 겪고 있지만 걱정할 짬이 없다. 내년 일본에서 열리는 동남아시아 4개국 유소년팀의 경기가 몇달 남지 않았다.

"민간 대사요? 너무 거창해서 싫어요. 그냥 먼 이국땅이지만 우리나라를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죠". 그는 현재 대구에 살고 있는 아내.자식과 함께 동티모르에서 사는 것이 작은 꿈이라고 했다.

사진 : 동티모르 유소년축구 김신환감독이 연습경기에 앞서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이재근기자)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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