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토.일마다 '음식꽃....웃음꽃'- 보현자연수련원

"지혜야, 유탁아. 학교 갔다 오니? 과자는 조금만 먹어야지".

지난 5일 오후 보현자연수련원(영천시 자양면 보현 2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쪼르르 달려온 마을 아이들을 조정숙(46) 원장이 반갑게 맞이한다.

"선생님, 오늘 학교에서 학예회가 열렸어요. 사물놀이를 하는데 얼마나 신났는지 몰라요".

재잘재잘 이야기를 늘어놓는 아이들의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매일 오후 초등학교가 파할 시간이 되면 수련원은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한다.

수련원 바로 옆에 있는 초등학교 분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다.

전교생이라고 해봐야 30명 정도 되는 작은 학교. 거의 매일같이 들러 간식을 얻어먹고 놀다가는 아이들은 조 원장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따른다.

◇부모 없는 아이들의 '엄마' 선생님

주말이면 수련원은 더 활기가 넘친다.

대구, 포항, 울산, 부산, 경주 등지로 흩어져 있던 아이들이 모여들어 주말을 함께 보낸다.

"엄마, 엄마!" 하며 조 원장을 친어머니처럼 따르는 소년소녀 가장들이다.

여기에 정상 가정 아이들도 함께 어울려 '주말 체험마당'이 열린다.

보현산 천문대 견학, 생태 체험, 사물놀이, 서각, 단소, 대금, 나무 가꾸기, 원두막에 누워 별자리 찾아보기, 모닥불 피워놓고 고구마.감자 구워먹기…. 자연속에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고 일요일 오후 떠나는 소년소녀 가장들은 방학이 되면 아예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엄마'와 함께 생활한다.

평범한 가정주부. 대학생인 세 자녀를 두고 있는 조 원장이 부모없는 아이들의 '엄마' 노릇을 시작한 것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였다

초등학생때 만나 대학생으로 훌쩍 커버린 아이들도 있고 인연을 맺은지 얼마 안되는 초등.중학생들도 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결혼해 지금까지 살면서 제 자식만 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평일에는 학교에서 급식도 주고 선생님이 계셔 괜찮지만 토.일요일에는 아이들이 자칫 흐트러지기 쉬워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말에 아이들을 모아 엄마 노릇을 해온 그녀는 지난 99년 폐교를 임대해 보현자연수련원(청소년야영장)을 열었다.

대구에 살면서 주말마다 들락거리다가 지난해 전재산을 털어 이곳을 사들이고 집도 옮겼다.

부모없는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고, 자녀와 부모가 함께 자연과 하나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그녀의 바람이 담겨 있는 곳이다.

"내 아이만 최고라고 생각하고 왕따, 자살, 학교폭력이 난무하는 요즘 세상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낳아본 엄마들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바쁘더라도 길 가다가 싸우는 아이들이 있으면 말리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물맛 좋은 고장에서 음식 솜씨 소문나

조 원장의 음식 솜씨는 동네에선 물론이고 대구에도 소문이 나있을 정도다.

김치를 담가도 맛이 일품이고 만드는 음식마다 감칠 맛이 돈다.

그녀는 아마도 보현마을의 물 맛이 일품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귀띔한다.

경북지역에서도 알아주는 청정마을인 보현마을은 금호강의 발원지인 보현산을 뒤로 하고 기룡산을 앞에 둔 산수가 수려하고 물맛이 좋은 고장이다.

지형이 높아 배추와 콩, 고추 등 밭작물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물론 그녀의 손맛도 빼놓을 수 없다.

음식 솜씨 좋은 종갓집 맏딸로 자란 데다가 절을 다니며 사찰음식까지 익혀 맛이 남다르다.

그녀가 담근 김치는 아삭아삭한 맛에 쭉쭉 찢어 먹으면 밥 한 그릇 해치우기는 순식간이다.

"김치를 담글 때 찹쌀풀을 쓰면 배추 줄기가 죽어 맛이 없어요. 간수를 뺀 소금을 써야 쓴맛이 나지 않습니다".

그녀는 찹쌀풀 대신 물에 대추, 감자, 다시마, 멸치, 양파, 무 등을 넣고 끓여 식으면 고춧가루, 생강, 마늘을 넣어 양념을 만들어 배추에 버무린다.

별 생각없이 만든 김치 맛에 반한 사람들의 권유로 내달 김장김치 담그기 체험 행사도 열게 됐다

늦여름 태풍 매미가 휩쓸고가는 바람에 배추 값이 올라 걱정이지만 여유가 된다면 어려운 이웃에게도 김장김치를 나눠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산 콩 맛이 좋은 보현마을에서는 두부도 사먹는 법이 없다.

집집마다 두부를 직접 만들어 따끈따끈한 두부를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아주 맛있다.

두부 만들기는 생각보다 쉽다.

콩(대두)을 하루정도 물에 불렸다가 믹서기에 간다.

물을 끓여 콩 간 것을 붓고 순두부처럼 망글망글 끓어오르면 간수 뺀 소금을 알맞게 넣어 뚜껑을 열어놓고 젓는다.

빛깔이 노르스름해지면서 끓어오르면 바가지로 퍼 보자기를 깐 틀에 부으면 된다.

이것을 그냥 두면 순두부가 되고 거즈를 덮어 꼭 누르면 따끈따끈한 두부가 된다.

주말.방학 체험마당에 참여하는 아이들에게 직접 음식을 해먹이는 조 원장은 "요즘 아이들이 인스턴트 음식을 너무 많이 먹는다"며 걱정한다.

그래서 수련원에서만이라도 몸에 좋은 자연식을 먹도록 음식에 신경을 쓴다.

아이들과 과자 대신 떡, 약밥을 같이 만들어 먹고 라면 대신 국수를 삶아 먹는다

요즘은 무밥이 아주 맛있는 철이다.

쌀 위에 채썬 무를 얹고 간수 뺀 소금을 살짝 뿌려 밥을 한다.

간장, 파, 마늘, 고춧가루, 참기름, 통깨를 넣어 양념간장을 맛있게 만들어 비벼 먹으면 돼 만들기도 쉽다.

같은 방식으로 만드는 표고버섯밥도 아주 맛있다.

이때 양념장은 표고버섯을 총총 썰어 참기름에 볶은 뒤 간장, 약간 매운 붉은.파란 고추, 참기름, 깨소금을 넣어 만든다.

봄에는 쑥밥을 해 먹는다.

물을 붓지 않고 두부를 으깬데 된장을 비벼 넣어 불에 자글자글 눌을 때까지 끓인 '빡빡 된장'에 비벼 먹으면 맛이 그만이다.

"엄마들이 부지런하지 않으면 못 합니다.

집에서 주스도 많이 사 마시는데 엄마가 직접 과일을 갈아주면 건강에 좋지 않겠어요. 간식도 감자, 옥수수, 고구마가 좋습니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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