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가을비 뿌린 뒤라 날씨가 한결 싸느랗다.
입동(立冬.8일)이 지나서일까, 아직은 11월인데도 마음은 벌써 겨울로 달려가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메주철이다.
'농가월령가 11월령'에도 '~부녀들아, 네 할 일이 메주 쑬 일 남았도다.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두소~'라고 읊었다.
예전엔 입동철 이집 저집 메주 쑤는 날은 아이들에겐 괜스레 즐거운 날이었다.
엄마가 이른 아침부터 콩 씻고 솥 손질하며 부산을 떨면 잔칫날이라도 된 듯 기분이 붕 들떴다.
사랑방이나 뒤란의 솥에 콩을 붓고 마른 솔가지를 두둑하게 지피면 없는 살림이라도 모처럼 느긋해지곤 했다.
콩 한 두말씩 메주 쑤던 때라 장작불이 하루종일 투두둑 거리며 타올랐고, 콩이 익어갈 때면 구수한 내음이 온 마당을 휘감았다.
마침내 솥뚜껑을 열었을 때 코에 훅 끼쳐오는 그 맛있는 내음! 연한 갈색으로 커다랗게 부풀어진 콩이 한솥 가득 차있었다.
먹을 것 귀하던 시절에 삶은 메주콩은 얼마나 훌륭한 군것질거리였던가. 아이들은 그릇째 들고다니며 밥대신 콩알을 집어먹었고 그러다 더러는 배탈을 만나기도 했다.
네모나게 또는 둥그렇게 모양새를 잡아 볏짚으로 묶어 햇빛에 말릴 때의 그 풍경 - 기와지붕의 곡선과 창호지문, 넉넉한 품새의 장독간, 그리고 처마 끝 새끼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메주덩이들이 이루는 그 조형미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멋이었다.
게다가 뜨끈하게 군불땐 방안에서 메주 띄울 때의 그 지독하게 쿰쿰한 내음이란…. 요즘 청소년들이라면 코를 싸매고 도망칠게 분명하다.
지난 80년대에는 못생긴 사람을 가리키는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라는 우스갯말이 유행했다.
'호박'과 어금버금하게 사용된 은어가 '메주'였지만 사실 우리에게 있어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게 바로 뚝배기 된장맛 아닌가.
잘 뜬 메주에는 흰곰팡이가 쓸지만 온도.습도가 과하면 잡균으로 썩어들어간다.
요즘 우리사회에는 지나친 권력욕.금력욕의 잡균으로 악취를 풍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썩은 메주는 버리면 되지만 사람 썩은 것은 어떻게 해야하나.
편집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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