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릴레이 대담>정순우·주보돈 'TK정신, 무엇이 문제인가'

-­사회:대구경북의 발전을 위해서는 대구경북의 정신을 계승하고 시대에 맞는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있습니다.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보돈(사진 왼쪽):대구. 경북의 정신은 두 가지 형태로 표출된다고 봅니다. 먼저 국채보상운동과 10.1항쟁 학문과 문화의 도시라는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특수한 문화입니다. 또 하나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뛰어난 인물로 대표되는 정신입니다. 타지역과 달리 대구.경북만의 특수한 문화는 '선비의 정신'을 들 수 있습니다.

▲정순우:흔히 문화는 '동사'라고 합니다. 문화는 박제화되거나 고형화된 것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부단히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의미죠. 따라서 대구.경북 지역이 가지고 있는 선비문화 혹은 사림정신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어떤 보편성을 갖고 역사의 답을 주는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 : 선비 정신이란 무엇입니까.

▲주:선비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수기치인'의 자세입니다. '수기치인'이란 먼저 자신의 정신을 닦고 남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흔히 '치인'을 정치적인 의미로 해석하는데 그보다는 남의 본보기가 된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즉 공익을 위하는 자신의 도덕성, 선진성이자 불의에 대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자세입니다. 혼자만 출세해서 부를 축적하거나 성공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정:선비정신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아우르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면은 봉건적인 명분론, 계층의식 등이며 긍정적인 면은 '의리지학'으로서의 선비정신입니다. 공사와 시비를 정확하게 가리는 것으로 볼 수 있겠죠. 선비는 성인을 지향하는 삶을 살며 참다운 삶을 위해 탐구와 몰두를 합니다. 또 선비의 보편적 가치는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면서 타인과 화해를 이루고 절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선비는 자신을 닦고 난 다음에 실천이 없으면 가식으로 치부합니다. 즉 지식을 사회, 혈연 집단 외에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선비의 본래 정신입니다.

-사회 : 선비정신의 부정적 모습만이 유독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일제 식민 지배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정치.사회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민초들은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비 정신의 옳은 부분을 배제한 채 입신양명만을 꾀할 수밖에 없었죠.

▲정:대구 문화가 선비 문화로 정의되면서도 그 한계성이 지적되는 이유는 근대화의 후유증 때문입니다. 급작스런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엘리트가 대구에서 배출됐지만 이를 건강하게 받쳐줄 시민 사회의 성숙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과 같은 대동 사회를 지향하는 전통이 있었음에도 지적 전통이나 나눔의 정신이 실종된 데는 시민 사회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데 원인이 있습니다. 특히 대구의 엘리트층이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정치권에 많이 편입되면서 내부의 기제가 마비되었고 지나치게 현실주의에 집착하면서 권력 지향성과 보수성을 띄게 됐습니다.

▲주:대구가 가진 보수성의 뿌리는 학연.지연에 얽매이는 패거리 문화가 바탕에 깔려있습니다. 여기에 덧씌워진 것이 정치문화입니다. 대구 사람들만큼 정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없습니다. 이런 현상에는 역사적인 배경도 한몫 합니다. 조선 후기 노론정권이 확립되고 난 뒤 영남 사림들은 정치에 진입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오랜 기간동안 기존의 유림들이 중앙정부로 정치적 복귀를 꿈꿔왔지만 실패했던 좌절과 패배의식이 부정적 요소로 남는 뿌리가 됐습니다. 이후 박정희의 등장은 현실정치에 영남이 복귀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중앙정치권력이 지역을 좌지우지하면서 선비정신에 입각한 문화가 뿌릴 내리지 못하고 저급한 정치문화가 군사문화와 결합하면서 정치 지향적으로 변했습니다.

▲정:다양성과 다원성이 공존하는 정치 철학과 문화가 있으면 갈등 속에서도 대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획일화된 이데올로기 속에서 정치문화는 비대해지고 기형화되면서 삶을 억압하게 됩니다. 다양한 정치문화가 형성될 수 있는 시민사회의 토양이 배양되어야 합니다.

-사:지역의 보수성이 너무 강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주:문제는 보수가 아니고 수구이자 폐쇄성이죠. 대구문화의 정신은 개방성과 적극성을 포함해야 합니다. 신라문화가 보수적이라고 흔히 얘기하지만 실은 일본, 중국, 고구려, 백제 문화가 모두 한데 어우러진 것입니다. 자신의 문화를 창조적으로 받아들이려면 외래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어느 틈인가 보수성 속에서 수구적인 성격만이 자리를 잡은 것이 문제입니다. 적극적인 전통 보수성을 살리는 가운데 개방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지역의 보수성은 농경문화에서 필연적으로 잉태됐다고 봅니다. 농경 문화는 정착성이 강하고 협업을 지향하기 때문에 땅에 의존하면서 '안분지족'하는 삶을 지향하게 됩니다. 자연에 회귀하는 삶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기 때문이죠. 농경문화에서 디지털 기술 정보 문화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마찰은 피할 수 없겠지만 열린 도시로서 다양한 자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될 때 가장 활발히 문화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주:농경문화가 기본적으로 보수성을 띠는 것은 맞지만 이보다는 오히려 지리적인 요건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겠죠. 전근대사회에서 영남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백두대간에 갇혀 있었습니다. 낙동강 수로가 내륙과 바다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지만 그 활용도가 떨어지면서 결국 영남은 지역적 폐쇄성이 강해졌습니다.

▲정:같은 남인이라도 영남 남인과 경기 남인의 문화는 서로 이질적입니다. 17세기 후반부터 경기 남인의 문화는 서학의 영향과 도시 상공인층 성장으로 인해 영남과는 다른 성격을 지니게 됩니다. 영남의 경우 문중이라는 집단이 지역의 보수성을 간직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문중은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단위로서 자체 논리 속에서만 움직입니다. 따라서 다른 문화와 쉽게 어울리고 호흡하는 데 제약이 있죠. 동학의 경우만 보더라도 호남은 동학을 옹호했지만 영남은 서원을 중심으로 동학을 역적이나 민중 봉기로 치부했습니다.

▲주:보수성은 자존심과 일맥 상통합니다. 영남 사람은 외부의 접근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지만 한번 열리면 끈끈한 정을 자랑하죠. U대회는 소지역 단위로 나뉘어 있던 정서적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점을 지역의 지도층 인사들이 깨닫고 방향성을 제시해야 합니다. 요즘 국가도 민족도 필요 없다는 세계주의가 확산되는 이유는 사회 지도층인사들이 모든 이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회 지도층이 선비 정신을 통해 모범을 보이고 남에게 베풀며 '우리'라는 잠재된 힘을 끄집어 내야합니다.

▲정:'노블리스 오블리제'에는 동의합니다. 조부나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 권위와 문화나 유산에 대한 자긍심은 보수성의 원천입니다. 아버지 세대는 몸소 자신의 가치를 실천했기 때문에 교육적인 모델이 되었지 천지개명한 창조력을 가지고 설득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건강한 보수성이 역사가 가지는 연속성을 지켜냈습니다. 덕분에 대구.경북이 다른 지역보다 폭넓은 안정성을 가지게 되었죠. 다만 검증된 가치나 규범이 어느 정도 보편 타당한가가 관건입니다.

▲주:양반 귀족사회가 500여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일방적인 지배계급으로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틀을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정한 규범을 지키지 않으면 스스로 도태되는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죠. 지금은 자기 주장이나 권리만 남아있고 그것을 유지시키는 보수성만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사회 : 대구.경북의 정신을 계승.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주: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회를 유지하는 힘은 개방성과 다양성에서 나옵니다. 다양한 생각, 출신,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대구에서 살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외부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들어와 융해되면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중국은 중화주의를 놓지 않으면서도 주변 문화를 받아들이는 개방성을 지켜왔죠. 대구도 다양한 피와 문화가 활기차게 수용될 때 창조적으로 문화를 만들고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정:대구 .경북은 역사 의식의 부재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발전과 효용에 미치다시피 매달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방향 감각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먼저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하는 집단이 있어야 합니다. 욕망에만 매달리는 현재 지식인과 대학사회가 하고 있는 역할이 무엇입니까. 이들이 깨어있는 지성인의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교육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관심도 필요합니다. 지금은 좀더 과감한 교육 투자와 인간에 대한 투자를 실현해야 할 때입니다. 박제화되지 않고 현실속에 살아있는 선비를 키우기 위한 투자가 절실합니다. 사회:김순재 문화부장 정리: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약력

*주보돈 : 경북대 사학과 교수.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경북대 박물관 관장역임. 저서-역사속의 대구, 대구사람들. 금석문화신라사등 다수

*정순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자료조사실실장. 저서-조선시기 사회사연구법. 신실학의 탐구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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